오늘도, 너희들 때문에 웃는다.
카톡!
‘내일 오전 대설주의보라고 합니다. 출근 시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이집 단체 카톡방에서 대설주의보 알람이 울렸다. 나는 즉시 출근 시간을 확인했다. 내일 늦지 않게 출근하기 위해서? 아니! 이른 출근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출퇴근표를 확인했다. ‘헉!’ 이른 망했다. 출근이다.
창밖에 흰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풍경을 보면 내 마음은 자연스레 아늑하고 포근해진다. 눈송이는 하늘을 출발하여 바람결에 춤추듯 한들거리다 살포시 땅 위에 내려앉는다. 솜사탕처럼 포슬포슬한 눈이 쌓일수록 내 마음은 고요하고 따뜻해져만 간다. 살랑살랑 눈송이가 나뭇가지를 안아줄 때면 햇살이 시샘하듯 반짝거려 맑은 물방울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눈이 내리면 내 안에 가장 아름다운 동화 속 ‘눈의 나라’가 몽실몽실 떠오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환상의 세계’이다. 눈은 ‘현실’이다. 오늘도 난 이른 아침부터 눈을 치운다. 내 ‘집 앞’ 아니고 ‘어린이집 앞’을! 어린이집은 깊은 골목길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평소에는 외부와 단절되어 조용하고 아늑하기만 하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우린 고립이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보육교사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눈 오는 날 이른 출근을 기피하는 이유다.
아침 일찍부터 내린 눈으로 어린이집 들어가는 골목길에는 하얗게 눈이 쌓였다. 그럴 때면 이른 출근 교사가 제설작업을 한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어낸다. 평소 삽질과 거리가 먼 나지만 제설작업만은 예외다. 자고로 삽질은 몸에 무리 가지 않게 해야 한다. 넉가래를 눈 안쪽 깊숙한 곳에 찔러 넣는다. 그리고 옆구리에 막대를 끼고 최대한 힘을 빼며 몸으로 밀고 나간다. 어느 정도 눈이 쓸렸다면 마저 쓸리지 않은 눈 위에 염화칼슘을 뿌린다. 처음에는 빗자루에 염화칼슘을 담고 살살 흔들며 뿌렸다. 그리고 다음 날, 난 양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경험을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은 빗자루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오른손으로 염화칼슘을 쓸며 뿌리는 거다. 확실히 몸에 무리가 덜했다. 가끔은 제설작업을 도와주는 학부모도 다. 참 나도 사람인지라... 그러면 안 되는데... 이런 날이면 그 아이에게 눈이 한 번 더 간다. 이렇게 100미터 정도 제설작업을 하고 나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드디어 제설작업이 끝나고 나의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눈 내린 날이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자고 소리친다. 지금껏 눈이랑 씨름하던 나는 따듯한 매트 아래 몸을 지지고 싶건만 “그래, 나가자!”하고 몸을 일으킨다. 제설작업으로 아직 마르지 않은 패딩에 눅눅한 장갑을 끼고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반면 아이들은 발발거리며 돌아다닌다.
“선생님 우리 눈사람 만들어요”
“(아! 요즘 눈은 잘 뭉치지도 않는데...) 그래! 선생님이 눈 동그랗게 만들어줄 게 데굴데굴 굴려봐”
“선생님 눈썰매 태워주세요”
“(아! 삭신아) 그래! 줄 꽉 잡아야 해. 출발!”
아이들은 코끝이 빨개지고, 장갑 넘어 손끝이 얼얼해질 때까지 논다. 들어가는 길 계단 앞에 ‘눈오리’와 ‘눈하트’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은 눈놀이로 체력을 다했는지 점심 먹자마자 곯아떨어진다. 세상 너희들이 제일 부럽구나!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집에 가는 길, 현관 계단 앞에 아이들이 만든 ‘눈오리’와 ‘눈하트’가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눈이 뭉쳐지지 않아 완성하지 못한 눈덩이 두 개도 있다.
눈 안 뭉쳐진다고 화내던 수연이
눈하트 백 개 만들겠다던 윤수
눈오리 밤새 춥지 않을까 걱정하며 집에 가던 소아까지
몸은 그 어떤 날보다 힘들었지만, 오늘도 역시나 너희들 때문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