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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Jul 27. 2021

남편과 계란말이

늘 소환되는 추억



연애 1년 결혼 13년 합쳐서 14년

고작 1년의 연애만 하고 결혼을 한 우리에겐 남들 같은 번듯한 추억이 많지 않다.

남편의 어머니가 했던 프랜차이즈 맥주집에서  학교 동기들 모임이 있었고 편입했던 남편 역시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난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라 인연이 될 거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 모임이 있던 이후 왕년에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 나를  알던 동기생이 이직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해볼 생각 없냐는 말에 노느니 알바라도 해서 돈을 벌자는 생각에 시작했던 일이 지금의  부부를 만들어 준 것이다.


남편은 본업이 끝나면 맥주집으로 출근했고 주방에는 남편의 어머니가 계셨다. 나와 어린 학생 아르바이트 둘이서 홀을 맡았고 남편은 주방에 들어가 어머니를 도와주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첫 알바를 하러 간 날, 한참 이직 준비 중이라 아주 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나는 키도 170에 살도 붙었으니 뭐

둔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난 결코 엉덩이가 무겁지 않은 날쌘 여자였다 날씬이 아닌 날쌘 여자


35평 홀을 이리저리 가볍게 뛰어다니는 한 마리의 날다람쥐라고 해야 할까?

테이블 12개를 나 혼자서도 다 커버가 가능했으니깐 말이다 (그 덕분에 저절로 하게 된 다이어트)


난 테이블만 커버한 게 아니라 남편까지 커버하고 있었나 보다.

잔뜩 술에 취한 날 남편과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걸 확인했고

우린 그날 부로 요즘 흔한 말로 1일을 시작했다.


우리의 추억은 늘 맥주집이 배경이다. 평일엔 본업으로 못 보는 날도 있었지만 주말엔 장 보러 가는 핑계 삼아 어머니의 눈을 피해 식자재 마트에서 데이트를 즐겼고,그래 봐야 고작 1시간 많으면 2시간 정도 였다. 가게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모스 부호같은 눈빛을 주고 받으며 은근 몰래하는 연애를 즐겼으며 주말에 마감하고 나면 어머니를 먼저 데려다 드리고 나를 데려다준다는 핑계 삼아  썬루프를 열고 새벽 하늘 별을 보며 감성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나의 이직은 점점 멀어져 갔고 면접에 통과해서 합격한 회사에 가기 위해 그만두려 했지만 , 남편의 그 큰 눈이 너무 슬퍼 보여서 차마 떠나지를 못했다. 결국 맥주집을 정리하는 그날까지 난 그곳에서 날다람쥐처럼 이리저리 누비며 지냈다.


맥주집이니 술도 안주도 넘치고 어머님이 안 계시는 날이면 남편이 가끔 안주를 만들어주고 그걸로 저녁을 대신할 때가 많았는데 그중에 단연 최고였던 요리는 호프집 계란말이였다.


왕계란 8개가 들어가며  사이사이 치즈를 넣고  

몇 겹의 말림으로 가장 큰 접시에 담긴 후

몇 가지 소스를 뿌려 꼬물거리는 가쓰오부시를 올리면

비주얼은 브런치 저리 가라 이며

레스토랑 스테이크처럼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먹어야 하는 대왕 계란말이


가게를 그만두고 나서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지금도 문득문득 그때 먹었던 계란말이 맛을 잊지 못하고 생각이 난다. 결혼 직후엔 남편만 할 줄 알아서 먹고 싶다고 하면 뚝딱 만들어 주었는데 음식도 하지 않으면 녹슬게 되는 건지 이젠 남편보다 내가 훨씬 더 잘 만든다

계란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남편과의 추억을 생각하기 위해 자주 만들어 먹는데

만들 때마다 12년 전 남편과의 연애 때를 생각하게 된다. 남편도 내가 호프집 계란말이를 만드는 날이며 아이들한테 꼭 아빠랑엄마 연애때 좋아했던 음식이라며 이야기 해준다

남들처럼 여행을 다닌 것도 아니고, 멋진 곳에서 프러포즈를 받을 수도 없었고, 추억이라고 하기엔 좀 부실하지만 남편과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 계란말이를 보면 짧지만 깊었던 연애시절을 소환 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전 만든 계란말이 우린 작은사이즈의 계란말이는 잘 만들지 않는다 이정도는 만들어야 아이셋 함께 5명의 가족이 먹을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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