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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Aug 07. 2021

보양식 따로 먹을 필요 있나요?

진초록 몸보신





복중에 가장 더운 초복, 중복, 말복

어김없이 백숙이나 미꾸라지 등 어른들의 입맛을 따라다니며 먹었었다. 어른들이 하는 흔한 반어법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며 "아~시원하다"가 절대 이해가 안 되던 시절에서

이젠 내 입에서 자동으로 나는 반어적 표현으로 내 아이들이 "엄마 이건 뜨거운 건데 왜 시원하다고 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래 왜 시원하다고 할까? 뜨거운 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뜨겁다 하지 않고 시원하다고 하면 이젠 진짜 어른이 된 걸까?


국민학교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님을 따라간 곳은  건물에 가게 이름은 쓰여있지 않고 가게 앞에 아주 빨간 글씨 로크 게 크게 "보신탕"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택가 골목 구비구비 걸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이젠 좀 그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쯤 도착했던 그곳은 음식을 하는 와중에서 문 열리는 소리에 손님이 오는걸 알 정도로 '드르륵' 거린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들어가고자 하면 내 키보다 높았던 알록달록 구슬로 만들어진 문발이 낸 시선을 강탈했고 어린 나이에 그 구술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테이블과 의자는 미적 감각을 포기하고 단순히 앉고 먹을 수만 있으면 되는 예쁨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을 따라 한여름의 삼복을 그곳에서 보냈다.


오늘은 뭘 먹을지 또 고민한다. 고민한들 딱히 뾰족한 요리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언제나처럼 저녁 준비를 위한 고민에 들어간다.

"루나야 오늘 며칠이지?"  둘째 딸은 익숙한 듯 대답한다

"오늘 엄마 5일이에요 오늘 장날인데요!"

아이도 내가 날짜를 묻는 이유를 알고 있다. 나도 어렴풋 며칠인지 알면서도 늘 이렇게 아이에게 물어본다.

"오늘 장날이구나 오랜만에 갔다 올까? 너희 떡볶이 먹을래?" 질문과 동시에 세 아이는

어쩌면 당연한 질문을 내가 했을지 모르고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있었다

"네 저 튀김도 먹으면 안돼요?"

"네 먹을래요"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떡볶이 질문에 대답은 몇 가지가 따라온다. 아이들이 셋이나 되다 보니 늘 세 가지 이상의 취향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대답을 들으니, 국민학교 입학 전 엄마를 따라 시장가던 생각이 났다. 차 없이 버스 타고 몇 정거장을 장바구니를 들고 가던 시장은 가는 길은 참 즐거웠다. 가면 구경할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으니깐 엄마한테 사달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었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라는 걸 지금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세명의 아이가 참새처럼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엄마 이거 보세요" "우와 이거 뭐예요" "이거 먹고 싶은데" "엄마, 엄마, 이것도 있어요" "저거 맛있겠다"등

어른의 목적과는 다르게 아이들에게 시장은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양옆에 앉아서 파는 모든 것들에게 관심을 주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서 심지어는 동시에 말이다. 나도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재잘거림을 보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난 심지어 사달라고 떼쓰며 길바닥에 앉아 울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우리 딸들은 얼마나 얌전히 있는 편인지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너무 더운 여름 동네 5일장

간단한 장을 보러 가기에 아이들을 집에 두고 홀몸으로 가뿐히 출발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는 집이지만, 그래도 우리 집은 겨우 31도일 뿐인데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지구의 아픔을 온전히 땅으로 내리꽂는 듯한 햇빛은

지금이 '여름'임을 결코 잊지 않게 해 준다. 습관 같은 장바구니와 담아올 반찬통은 나의 외출 짝꿍이고 늘 에코백에 5분 대기조처럼 출동을 준비하고 있다.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마스크를 쓴 얼굴은 목욕탕 한증막처럼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래도 나지막한 여름의 푸른 하늘은 참 예쁘구나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면 입구부터 장사치들의 빠른 발걸음들이 느껴진다. 서로 포개어 친 천막은 서로를 감싸듯이 세워져 있고 꼭 장사꾼 마음 장사꾼이 아는 것처럼 서로의 해를 막아주기로 약속한 것 같다.

늘  같은 자리에 노상 떡볶이집을 먼저 들러 아이들을 줄 떡볶이를 담아본다. 오랜만에 본 분식 이모는

그간의 힘든 여름장사를 알게 해 주듯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떡볶이를 담을 통을 건네주며

"이모 왜 이렇게 살이 빠지셨어요 더운데 고생 많이 시죠?" 라며 건넨 말에 그저 웃으며

떡볶이를 가득가득 담아주었다.

"떡볶이 안 샐라나?" 담아주는 통이 부실해 보였는지 국물이 샐까 봐 걱정하는 이모에게

"이모 저는 이모가 더 걱정돼요 좋은 거 많이 드시고 일하세요~"라고 말하며 국물은 걱정하지 마시라며 당부했다. 가방에 넣은 떡볶이는 꽤 무겁다. 3인분 달라고 했는데 기어코 더 넣어주시며 국물 넘칠까 봐 걱정하는 이모님 덕분에 난 진짜로 넘칠 국물을 걱정해야 했다.


살이 빠져서 정말 뼈밖에 없는 팔뚝으로 많이도 담아주시는 분식 사장님


그리고 서둘러 고구마 줄기, 호박잎, 콩을 사서 서둘러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여름이라 해가 길다고 해도 주방에서 음식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해넘이가 시작되고 아이들이 저녁 언제 먹냐고 물어보는 시간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여름은 싱싱한 계절이다

저장된 야채나 과일보다, 그 계절에 나오는 제철 재료들이 많이 나온다. 자연이 주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내리는 비로 자연 허락해주는 만큼 자라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 과일은 저장을 할 수 없는 과일들이다. 바로 참외와 복숭아

사과나 배처럼 저장하기 힘든 과일이라 지금이 아니면 맛볼 수 없고 지금이 지나고 나면 또 세 번의 계절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과일 말고도 갖가지 녹색채소들은 푸릇함을 가지고 앞다투어 장에 나오고

그중에 가장 여름 같은 맛 삶은 호박잎은 나의 여름을 진초록으로 만들어주었다.


진한  호박잎을 가족들에게 해주기로 했다.

삶기 전에는 까슬까슬하고 넙데데한 것이 무슨 맛이 있을까 싶지만, 호박잎으로 쌈을 먹어본 사람들이라며 잊지 못할 여름의 맛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장에서 사 온 호박잎은  씻어서 데치기 전 그렇게 까탈스러울 수가 없는데

삶아진 후에는 진한 풀색은 더 선명해지고 아주 순한 양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다.





 

삶아진 호박잎만큼 중요한 것은 강된장

세상 이런 단짝이 있을까? 그냥 된장으로는 절대 호박잎의 여름 맛을 올려줄 수가 없을 것이다.

달짝지근하며 살짝 매콤함이 있어 풀 맛만 나는 호박잎의 후광을 책임져 주는 것이 강된장이다.

좀 덥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쌈을 먹기 위해서는 나의 수고로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배고프다는 가족들을 위해 갖가지 야채와 함께 된장을 보글보글 끓이면서 내 입속에서는

이미 호박잎과 강된장의 휘몰아치는 여름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바탕 잔뜩 화가 난 듯 보글보글 끓어오른 된장과 함께 호박잎을 가지런히 펴서 식탁에 올린 오늘 저녁은

나의 기억 속 엄마와의 저녁밥상처럼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처음 먹어본 호박잎 쌈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나 역시 어릴 적 맛의 기억이 혀 끝에서 올라왔다.





온 가족 손바닥엔 진한 초록색의 호박잎이 올려져 있고 갓 지은 밥에 강된장 올려 살포시 덮어 한입씩 넣는

진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아이들에게 나의 기억 속 여름이야기를 한 가지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엄마가 7살 때 살던 집은 머리 감을 때 마당에서 감았거든 어느 여름날 세숫대야에 머리 숙이고 머리를 감는데 할머니가 자꾸 더 숙이라고 얘기해서 있는 힘껏
 숙이다가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대문까지 갔었다 할머니랑 엄청 웃었어 하하하


별거 아닌 것 같은 나의 추억 이야기에 세 아이는 연신 호박잎 쌈을 입에 넣으며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나의 여름날 호박잎은 내 기억 속 여름을 아이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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