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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May 31. 2021

경험은 가장 빛나는 교육

미니멀 육아, 도전이 아름다운 딸

교육은 때가 있다


사교육 없이 4학년까지 왔다.

큰 도시에서 8년, 읍단위 도시에서 3년, 그리고 다시 큰 도시로 우린 나왔다.

내가 말하는 사교육은 좀 큰 맥락이다. 태권도, 피아노, 처럼 아이들의 재능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등 말 그대로 학습적 교육을 말한다.


큰딸은 방문학습지 몇 개월, 일주일에 한 번가는 미술 1년 외에는 다른 기타 사교육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걸로 난 충분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딱히 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한글도 이른 시기에 가르치지 않았고 자연스레 어린이집 누리과정 중에 깨우쳤다. 


5살에 한글을 떼고, 책을 스스로 읽고 이런 거랑은 전~혀 상관없는 우리 집 아이들이다.

둘째도 셋째도 전혀 사교육과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 첫째 때 했던 방문학습지조차도 못한 아이들이다.

(둘째는 언니 따라 몇 개월 한적은 있다)

셋째는 아예 경험이 전무하다, 6살 현재 58개월 자신 있게 자신의 이름은 쓸 줄 아는 당찬 아이

난 그거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이 든다!


초등 입학 이후에도 선행은 하지 않았다. 선행으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서의 수업이 재미없고 지루 할까 봐 

첫째 아이가 4학년과 현재 5학년 1학기까지 선행 학습을 하지 않는다.(문제집은 있지만 거의 풀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는 교과과정을 잘 따라주었고. 

혹시 부족하고, 버거운 과목은 담임선생님께 의논을 드리고 방과 후 30분 정도 따로 지도해주시기도 했다.


근데 나라고 늘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음 그래'라고 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때론 조급하고 다른 엄마들이  영어학원 수학학원 공부방 등을 보낼 때 '나도 보내야 되나? 우리 애만 뒤쳐지는 거 아닐까? ' 이런 생각으로 밤잠 못 이룬 적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엔 남편과 나는 과잉교육은 절대 아이에게 득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늘 하던 대로 때가 되면 혹은 아이가 원하면, 혹은 아이에게서 흥미가 보이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은 지식적 교육의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경험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들


두 번째 살았던 도시는 경상남도 사천시 

정말 조금만 나가면 여기저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은 곳이었다.

비록 그 도시에서 난 너무 힘들었지만, 아이들 만큼은 부러울 것 없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사 오기 전 버킷 리스트였던 바다낚시 
우린 이날 몇 번의 장소를 옮기다 기필코 한 마리를 낚았다 방생하였지만 기억 속에 잊지 못할 하루


바다, 산, 강,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에서 우리 부부는 마음껏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주고 또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갔다. 대도시에 살았다면 너무 어려운 일들이었거나 아니면 맘먹고 2박 3일 타지로 여행을 가야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당일치기로 다 할 수 있었고 우린 주말이면 어디든 떠날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리 아이들은 자연에 대해 또래 아이들보다 많은 경험이 쌓였고, 특히 큰아이는 식물, 동물, 곤충 등에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요즘은 지나가다 모르는 벌레나 풀 나무 등을 보면 큰딸에게 물어본다 

'리아야 이거 무슨 벌레야?' 

참 막힘없이 대답하는 딸을 보면 내가 어른이고 엄마지만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벌레도 척척 아무렇지 않게 잡기도 하고 먹는 풀인지 못 먹는 풀인지, 해가 없는 벌레인지, 아닌지도 내게 이야기해준다.

학교 방과후 체험 시간에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주는데 각자 자기가 가지고 갈 수 있게 하였고 

애벌레를 아무 도구 없이 만지는 아이는 우리아이밖에 없었다고 선생님께서 놀랍다고 이야기 하신적도 있다



초봄 산에 가면 개구리알을 볼 수 있다. 딸은 개구리알인지 도롱뇽 알인지도 구분한다.



그 중심엔 내가 아닌 아빠의 영향이 엄청나다. 식물과 곤충 동물 등 을 좋아하는 남편은 어딜 가든 무엇을 물어보든 아니 물어보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준다.

우리가 보는 흔한 풀들도, 갯벌에서 보이는 것들도 남편에게 물어보면 막힘없이 대답해주니 

아이들은 자연체험 해설사가 따로 필요가 없다. 그 덕에 옆에서 듣는 나는 고사리,부추,마늘 등 밭작물들을 알아볼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남해는 사람들에게 많은걸 아낌없이 주는 섬이다 종종 고둥을 잡아 된장 넣고 끓여 아이들과 함께 먹곤 했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승마도 첫째와 둘째에게는 신세계였고 큰 두려움을 이기는 작은 연습의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의 남쪽나라 삶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을 안겨준 곳이다. 그곳에서의 짧은 2년여의 시간은 현재의 시간을 보내는 나의 아이들에게 글자로 배우는 교육보다 더 큰 에너지가 되고 있다



경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어느 날 큰딸은 하교하고 와서


"엄마 친구들이 나보고 아는 게 많다고 그러는데요?"

"내가 아는 게 많은 건가요?"


난 이 질문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왜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해준 거지? 네가 무슨 얘기했어?"

딸은

"아니요 난 그냥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어느 지역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난 엄마랑 아빠랑 가본 곳이라서 그냥 대답했어요 근데 애들이 아는 게 많데요"


우리 가족의 이사를 다니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경기도에서 경남으로 이사 가기 전 다시는 이곳으로 이사 올 수 없을 것 같다며 주변에 갈 수 있는 곳은 무조건 다녔다. 경남에서 경북으로 이사 오기 전 

또 다시는 경남으로 갈 수 없을지 몰라서 가볼 수 있는 곳은 주말마다 의식의 흐름처럼 다녔다 

그리고 명절엔 부모님 댁에 내려가는 길 올라가는 길 국도로 다니면서 가 볼 수 있는 곳엔 꼭 들려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간다. 흔한 키즈카페나 직업체험, 놀이 동안은 가본 적이 12년 동안 10손가락 안에 든다. 하다못해 식당도 키즈카페가 있는 곳은 되도록 피해서 간다. 식당은 밥을 먹는 곳이지 놀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집 근처가 아니라도 좀 먼 거리 지역도 많은 곳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일부, 충청도까지 각 지역에 골고루 다녀본 셈이다 그 기억을 중간중간 상기시켜주는 것은 저녁 시간대 많이 나오는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그램이나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같은 방송을 보면서 

"우리 저기 다녀왔어 저기서 뭐 먹고 , 너희들 저기서 그것도 봤잖아"

라며 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자꾸 쫑알쫑알 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갔던 곳은 기억을 못 하는 곳도 있어서 계속 이야기해주다 보면 " 어 맞아요 그때 엄마가 뭐 했잖아요" 라며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이 아이에겐   친구들 사이 많은 걸 아는 친구로 인식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리 가족의 교육은 아이들도 좋아하고 되레 먼저 "앵두 따먹으러 가요 오디 따 먹으러 가요 아빠 간식 들고 산에 가서 먹어요"라고 조르기도 한다 


아이들의 경험치를 높이는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 가지 추가가 된 건 이제 5학년이 된 큰 아이에겐 필요한 사회적 경험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사회적 경험은 필수이기에 

자격증 시험 도전과, 대회 출전하는 경험, 글쓰기 등  나름 자신감도 생기고 , 긴장감을 떨쳐내는 경험을 연습하고 있다. 



교육 중에 가장 기본은 인성교육이며 그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경험 교육은 

아이들을 가장 빛나게 해 줄 거라 믿는다. 그 빛나는 경험은 혼자 할 수 없으니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의 노력과, 아이의 경험과, 바른 인성이 갖춰진다면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스스로 알게 될 거라 믿는다. 




에필로그:)

큰아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으로 인해 저도 아이도 좀 힘들었던 일이 있었어요 

세로 곱셈을 분명히 배웠는데 그리고 문제를 풀었는데 

어느 날 문제집을 풀면서 시켜보니 못하더라고요 

전 늘 생각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은 못할 것 같아요 

아이에게 왜 못하냐고 채근하고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상황까지 갔죠

담임선생님께 상담전화를 드렸어요 다행히 지금껏 담임을 맡아주신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 정말 좋은 신분들이었죠

상담 후 선생님께서 그럼  일주일 정도 방과 후에 30분 정도 곱셈에 대해서 아이에게 설명해주시기로 하셨어요 그 덕분에 아이는 세로 곱셈에 대해 이해하고 올해 초 그러더군요

"엄마 이렇게 쉬운 건데 제가 왜 못했을까요?"

웃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제겐 큰 고민이었거든요 전 국민학교 수포자라서 아이만큼은 그렇게 둘 수 없었으니깐요 큰아이는 본인이 못하면 그 화를 이기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성향이에요 그래서 그 성향을 좀 누그러지게 해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래서인지 아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서 인지 지금은 울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어요  부모가 노력해도 아이의 성향을 모두 알아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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