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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끝없는대화 Jun 14. 2021

게으른 사람은 어떻게 살죠

기력 없는 자의 청소와 미니멀 라이프

 태생적으로 주어진 에너지가 적다. 별 것도 안 했는데 집중력도 금방 고갈되고, 근성도 야망도 없어서 나태하고 뜨뜻미지근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한 달에 백만 원만 들어오면 몇 년이고 쉬엄쉬엄 재밌는 것들 배우고 읽으며 사는 것이 꿈이다. 운동 30분 하고 나면 하~오늘 열심히 살았네 하고 만족하며 샤워하고 드러누워 잠든다. 솔직히 게으르고 느리다. 몸뿐만 아니라 두뇌가 영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엉덩이는 무거운데 가만히 있는 것은 싫어서 뭔가 쉬지 않고 꿈지럭꿈지럭 움직이고는 있는데 별 눈에 띄는 성과는 없고, 취미생활도 이것저것 손 대보고 단물만 빼먹고 발을 뺀다. 책도 유익하고 어려운 건 안 읽는다. 재밌고 입맛에 맞는 소설만 읽는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열과 성을 다해서 후회 없이 노력한 적이 없다. 이 악물고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 조금 부끄럽다. 누워서 저절로 포도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야생에서 나 같은 생물이 태어났다면 살그머니 도태되고 말았을 것이다.


어릴 때 선생님들이 항상 하는 말,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한다였다. (머저리같이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애를 자극시키면 공부를 좀 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말에서 근자감을 얻어 대학입시 때까지 적당히 공부해서 이 정도면 노력 대비 성적이 잘 나온다고 생각하고 적당한 수능성적에 적당한 디자인 대학을 들어갔다. 대학생활도 열의 없이 해야 할 과제만 했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졸업학점은 겨우 2.96, 전공인 디자인실력도 그냥저냥, 대외활동 하나 없었다. 자격증도 딱 하나. 이렇게 글로 적어놓고 보니 당시엔 굉장히 힘겹게 졸업했는데 좀 참담하긴 하다.


 취준생 때에도 취성패 담당 선생님께 등을 떠밀려 포폴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급하게 만들어놓고 그냥 아무 회사나 여기저기 지원해서 첫 번째로 합격한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요새 그렇게 유행하는 n잡도 시도도 안 해봤다. 평생 제대로 된 다이어트도, 주식도, 재테크도 안 해봤고, 얄팍한 디자인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자기 성찰,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데 그렇다고 또 정신이 들어서 부지런한 사람으로 180도 변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럴 의지도 없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세상의 균형이 맞지 않나 태평하게 생각하면서도 가끔 불안해서 의미 없고 얕은 노력을 해본다. 주식 이론 공부라던가, 운동 영상을 한 번 따라 해 보고 엄청난 근육통에 손사래 치면서 다시는 하지 않기도 하고, 직업을 바꿀까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창업정보를 알아보기도 한다. 컴퓨터도 첨단기술도 안 좋아한다. 아날로그, 가내수공업, 자급자족의 로망이 있다.


 회사도 아무 대책 없이 왕복 3시간 반 출퇴근과 9-6 동안 한 공간에 갇혀있다는 것이 싫어서 때려치웠다. 창업을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아무런 계획도 못 세웠다. 이제 뭐해먹고 사나 발 동동 구르면서 잉잉 울기도 했지만 결국 태평스럽게 제주도 4박 5일 비행 티켓 끊어놓고 다녀와서 생각하기로 했다. 적금도 안 들었다. 실업급여도 퇴직금도 없이 덜렁 현금 천만 원만 들고 퇴사한다. 생각만 많고 실천한 게 없다. 아빠한테 다시 용돈을 주십사 하고 징징댈까? 평생 독립은 못 할 것 같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나의 게으름은 연혁이 오래되었고 한결같아서 어처구니없웃기기까지 하다.   적당히 통통한 사람은 살쪘다고 놀리면 상처 받는데, 진짜 뚱뚱하면 그냥 받아들이고  돼지야! 하지 않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고 걱정은 하는데 요즘 세상에 굶어 죽기도 쉽지 않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인생은 주기적으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라고 생각하는데, 해파리처럼 수류에 몸을 맡기면서 파도가 오는구나~ 가는구나~ 하고 즐기며 사는 태도를 획득하고 싶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청소와 버리기를 좋아하는데, 마음이 무겁고 엉망진창이라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지 모를 때 방을 뒤져서 쓸모없는 물건들을 찾아 버린다. 끊어진 머리끈, 세 개씩이나 있는 충전 케이블, 갖가지 포장박스, 보풀진 옷, 작아진 바지, 손이 안 가는 신발, 오래된 처방약, 다시는 읽지 않을 책, 추억의 잡동사니들... 무엇이든 신경 쓰이고 짐이 되는 물건들은 버린다. 큰 물건보다 간과하기 쉬운 작은 물건들이 훨씬 많고 선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청소를 시작한다. 이불과 베개커버를 교체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과 서랍   바닥을 쓸고 닦는다.  부스러기는 빗자루로 쓸고 밀대로 닦는다. 닦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발에 닿는 기분이 뽀득하고 개운하다. 청소의 달인이 아니라서 신경 쓰이고 보이는 곳만 청소한다. 내킬 때는 인덕션과 싱크대, 화장실까지. 세면대 닦기는 수시로, 전체 청소는 아주 가끔. 변화가 커서 보람이   곳이다.


 그렇게 버리고 쓸고 닦으면 내 삶이 조금 깨끗하고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이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모르겠다. 조금 일해서 적게 벌고 적게 쓰고 해파리처럼 존재감 없이 살아도, 그래도 괜찮은 걸까?

 아직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못했다.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여정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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