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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Jul 21. 2023

눈물의 조리원 생활-2편.

Day6.

포도가 태어나기 전 해두려고 했던 빨랫감들이 여럿 있었다. 아기옷, 가제손수건, 아기이불부터 포도가 쓰게 될 방의 커튼이랑 내 이불 등등. 남편에게 매일 한 가지를 부탁했는데, 자꾸 일을 미뤘다. 저녁에 통화를 하면 매번 내가 하는 질문은, 그거 빨았어? 왜 안 빨았어? 언제 하게? 지금 세탁기 돌리면 언제 건조기까지 돌리려고 그래? 였다. 결국 참다참다 터져버린 남편. 서로 거친 말들이 오갔다.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퇴근하고 피곤한데, 병원에 있는 포도도 신경 쓰이고, 아인이도 챙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을 거다.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었는데 자꾸만 남편을 보채게 됐다. 그냥…. 빨래라도 다 끝내놓으면 포도가 금방 우리에게 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그날 저녁, 아인이와 남편이 조리원에 잠깐 들렀다. 아인이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는데, 아인이는 우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계속 왜 우냐고 물어댔다. 당황해서가 아니라 정말 우는 이유가 궁금했나 보다. 다행히 내가 없어도 잘 지내는 듯한 아인이. 동네 이모에게 선물 받은 어린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자랑을 한다. 빨래 때문에 한차례 말다툼이 있었던 남편과 나는 억지로 웃으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어색한 가족사진


Day7.

조리원에서 배려해 준 덕분에 입소해 있는 기간 동안 한두 번의 외출이 허용되었다. 마침 산부인과 외래진료가 잡혀있어서 병원에 가야 했고, 포도 면회도 할 수 있었다. 역시나 쿨쿨 자는 포도. 한 번씩 실눈을 뜨기도 했지만, 계속 잠만 잤다. 이날은 마침 의사쌤이 신생아중환자실에 와 계셔서 포도의 상태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포도는 잘 먹는다고, 2차 초음파 검사 결과가 잘 나오면 퇴원해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2일 전 면회에서는 잘 못 빤다고 재활해야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며칠 만에 또 잘 먹는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그것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지만, 지난 며칠 눈물바람으로 지낸 게 조금은 억울해졌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신생아중환자실을 나오는데, 마침 퇴원하는 아기와 부모들을 마주쳤다. 부부의 목소리가 너무 들떠있었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아기를 엄마가 안았다가 아빠가 안았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괴로웠다. 나는 포도가 퇴원하는 날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왼: 실눈 뜬 포도 / 오: 짜증난 포도


Day8.

주말, 포도면회를 다녀온 남편. 2차 초음파 검사결과를 알려줬는데 이번에도 뇌에 하얀 무언가가 보인다고 했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4~5일 정도 뒤에 mri검사를 하기로 했다. 퇴원은 다음 주 토요일쯤 할 수 있을 것 같단다. 2차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의사들은 늘 최악의 상황을 말하다던데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 말에 기대서 퇴원 때까지 최선을 다해 기다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Day9-12.

나의 눈물바람이 드디어 진정이 됐다. 밤늦게까지 의사에게 들은 단어들을 검색해 보는 것도, 남편에게 나의 불안을 쏟아놓는 것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만 해야지. 우리 아이니도 할머니랑 이 시간을 잘 지내주고 있고, 포도도 일단은 건강한 것 같고, 남편도 묵묵히 맡을 일을 해내고 있으니까. 나는 내 몸을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조리원에 있는 반신욕기도 매일 하고, 골반교정기도, 원적외선기도 매일매일 했다. 최대한 건강한 몸으로 포도를 만나러 가야지!


오랜 고민 끝에 포도의 이름을 정했다. 재이. 언젠가 아들을 낳으면 붙여주고 싶은 이름이었는데, 남편의 성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그냥 과감하게 정해버렸다.  “심을 재(栽), 기쁠 이(怡)” 음에 맞춰서 뜻을 정하긴 했는데 어쩌다 보니 뜻도 마음에 든다. 재이재이 우리 재이.

왼: 영상통화 중에 깔깔깔 / 오: 가녀린 포도의 다리


Day13.

원래 14일 차에 퇴소인데, 남편이 일이 있어 13일 차에 쉬게 되는 바람에 나도 그냥 그날 퇴소하기로 했다. 슬슬 답답해지기도 했고, 집 생각도 나고, 아인이도 보고싶고. 퇴소 후, 처음으로 남편과 같이 면회를 갔다. 엄마아빠 같이 온 걸 아는지 처음으로 눈 뜬 모습을 보여준 포도. 남편은 나랑 면회를 같이 가서 좋다고 했다. 혼자 다니는 게 마음이 쓸쓸했나 보다. 이때의 우리는 서로가 짠하고,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그랬다. 서로가 없었음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싶다. 어쨌든 이제 집! 포도를 맞이할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눈 뜬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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