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남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본가 거실 벽에
어머니가 스티커로 휘갈겨 붙여놓은 문장이 있었다.
Amor fai.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니체의 문장을 좋아하고,
그의 사유를 따라 문장을 붙들고 사는 사람으로서
이걸 못 알아볼 리가 없었으니까.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그런데 벽에는 분명히
T 하나가 빠져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상태를 그대로 두었다.
혹시 내가 라틴어를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확신보다 망설임이 먼저 나왔다.
말이라는 건 언제나 그렇다.
틀렸다는 확신보다,
혹시 내가 틀렸을까 하는 조심이 앞선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해서
인터넷을 두드렸고,
역시나 T는 빠져 있었다.
아모르파티.
김연자 선생님의 노래 제목으로도
이제는 너무 익숙한 말.
누가 봐도 무시할 수 없는
ㅌ, T 하나의 부재였다.
그 문장은 그렇게
1년이 넘도록
벽에 붙어 있었다.
나는 일본에 살고 있고,
한국에 오면 늘 잠깐 머무르다 가는 딸이기에
그 어긋난 단어를
어쩐지 고치지 못한 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와
어머니 집에 머무르며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엄마, 저거… T가 빠진 것 같아."
어머니는 잠시 멈칫하시더니
김이 빠진 얼굴로
아예 fai 부분을 전부 떼어버리셨다.
그렇게 벽에는
단 하나의 단어만 남았다.
Amor.
운명을 사랑하라에서
운명이 사라지고
사랑만 남은 자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더 좋았다.
더 범용적이고,
더 포용적이고,
더 강력한 단어가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이게 더 낫네" 하시며
꽤 만족스럽게 웃으셨다.
이 긍정적인 마인드.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아, 내가 엄마를 닮았구나.
우리는 살면서
이렇게 잘못된 단어 하나로
소중한 의미와 마음을
상대에게 잘못 전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님'에 점 하나 잘못 찍어
'남'이 된다는 말처럼,
우리의 마음도
말 한 글자, 말 한 타이밍,
말 한 문장을 건너뛰는 순간
아주 쉽게 엇나간다.
오해는
말이 많을 때도,
말이 없을 때도 생긴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오해는
관계를 고칠 기회조차 남기지 않는다.
꺼내지 못한 한 문장,
미뤄둔 한 마디,
"알아주겠지"라는 침묵.
그 침묵은 종종
배려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상대에게
해석을 떠넘기는 일이 된다.
운명을 사랑했어야 했는데,
의미 없는 무언가를 사랑하게 된
벽의 글자처럼,
우리도 그렇게
의도와 다른 감정을 건네며 산다.
사실 대부분의 상처는
악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과,
했어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말은 정말 중요하다.
여기서 말은
웅변이 아니다.
무대 위 발표도 아니다.
스피치란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 연습에 가깝다.
사랑을 전하는 것도,
사과를 건네는 것도,
경계를 세우는 것도
모두 스피치다.
우리는 매일 말을 하지만
연습하지 않은 말은
대개 감정에 끌려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1분, 2분, 3분 스피치.
<1분>
지금 내 감정을 설명하는 연습.
"내가 왜 오늘 예민한지."
<2분>
관계 안에서의 나의 상태를 말하는 연습.
"요즘 우리가 왜 조금 멀어진 것 같은지."
<3분>
부탁, 경계, 사과를 담는 연습.
"이건 고치고 싶고,
이건 지켜줬으면 해."
길게 말하라는 게 아니다.
짧게, 정확하게,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말하는 연습.
그리고 이 연습은
이미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음성 메시지.
문자보다 오해가 적고,
말의 온도와 숨,
잠깐의 망설임까지 전해지는 방식.
녹음해서 보내는 그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된다.
"아, 내가 이런 톤이었구나."
"내 말이 이렇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그 깨달음 하나만으로도
관계의 절반은 정리된다.
말은 정확하지 않으면
의미를 잃고,
너무 조심하면
기회를 잃는다.
Amor fati에서
T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운명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았다.
어쩌면 우리는
운명을 사랑하기 전에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벽에 남은 단어는
Amor였다.
운명을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말해야 남는다는 것처럼.
말은 관계의 장식이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최소한의 도구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도구를
생각보다 오랫동안
연습하지 않은 채
사용해 왔을 뿐이다.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늘
새해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계획을 떠올리지만
정작 놓치기 쉬운 건
이미 곁에 있는 인연들이다.
벽에 붙은 단어 하나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굳이 꺼내지 않았던 인사들.
오래 알아서,
가까워서,
혹은 너무 멀어져 버려서
미뤄두었던 말들.
하지만
말하지 않은 마음은
끝내 기록되지 않는다.
"고마웠다"는 말,
"함께여서 힘이 됐다"는 인사,
"잘 지내길 바란다"는 짧은 안부 하나쯤은
오늘 같은 날에야말로
조심 없이 건네도 되는 말일 것이다.
운명을 다 설명하지 않아도,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Amor처럼
사랑만 남겨도 충분한 하루.
묵은 인연에게도,
가까이 있는 인연에게도
단 한 문장만은
놓치지 말고 건네보자.
말은
관계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 아니라
관계를 계속 살아 있게 하는 숨 같은 것이니까.
오늘,
벽에 남은 단어처럼
사랑이 남는 인사를
하나쯤은 꼭 건네는 하루이기를.
이 자리를 빌려, 2025년 7월 중반 브런치에 입문해
지금까지 저와 함께해 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늘 성실하게 글을 읽어주시고
유익한 댓글로 제 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신
#ㄱ김혁준의보험스토리 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슴으로 읽어주시며
진심으로 피드백과 조언,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가슴속호수 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일일이 호명드리지는 못했지만,
제 글을 아껴주시고
좋아요와 댓글로 마음을 건네주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귀한 시간 내어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5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멋지게 살아오셨습니다.
새해에도 저는
저만의 글로
담대하게 이 자리에 머물겠습니다.
2026년도, 함께해 주세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