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감정을 믿지 않았다

by 희유


나는 오래도록
내 감정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슬플 때도,
분노할 때도,
외로울 때도
그 감정을 곧바로 '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이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 이 마음은 사실일까, 반응일까?"
"이 상태로 결정을 내려도 괜찮을까?"


나는 감정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깊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조심했다.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나는 위로받는 글보다
해부하듯 들여다보는 글을 좋아했다.


'괜찮아질 거야'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먼저 찾았다.


울기 전에 기록했고,
포기하기 전에 정리했다.


나를 달래기보다
나를 이해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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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사세요?"
"왜 그렇게 단단해 보이세요?"


사실 나는 단단하지 않다.


나는
부서지기 전에 구조를 바꿨을 뿐이다.


무너지지 않은 게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설계를 바꿨다.




이 책은
잘 버틴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자기 마음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며 삶에서

감정의 관찰자로 살아온 사람의 기록이다.


어떤 선택이 나를 망가뜨렸고,
어떤 거리가 나를 살렸으며,
어떤 태도가 나를 회복시켰는지.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지나오며 배워 왔다.




그리고 이 기록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글들이 아니다.


〈감정의 품격〉이라는 이름으로

매거진에 하나씩 남겨온 시간의 결과다.


많은 분들이 오래 머물러 주었고,
다시 읽고, 질문하고,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 주었다.


그 반응이 고마워서
흩어진 기록들을 다시 꺼내어,
겹치는 감정은 덜어내고
가장 오래 남은 문장들만 남겼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은 다시 설계했다.


이 책은
그렇게 다시 정리된 마음의 지도다.




이제

조심스럽게

이 기록을 건넨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만.


위로가 아니라,
방법으로.


공감이 아니라,
구조로.


이 기록이
당신의 감정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다시 바라보고 설계할 의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