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5번 출구를 향해 가는 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입구쯤을 지날 때 늘 보이는 남자분이 있었어요. 그는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리고 있었죠.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양다리는 없었고, 돈통을 앞에 두고 머리를 한없이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몸통이 실린 만한 크기의 바퀴 달린 작은 구르마가 늘 그와 함께 있었죠.
겨울의 잎새 비 오는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그가 있었죠. 여느 사람들처럼 저도 그를 지나치려다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어 돈통에 넣었습니다. 내 기분이 좋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기분이 마냥 좋지도 않았습니다. 돈을 넣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들이 범죄에 악용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일할 기회가 아닌 돈을 주는 것은, 그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타인에게 의존하게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한결 편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을 그냥 지나쳐도 한치의 거리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죠. 마치 그게 그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그 길을 지나는데 그분이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 건장한 남성이, 모든 신체가 온전히 보존된 사람이 그와 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돈통을 앞에 두고 말이지요. 돌연 화가 났고 갑자기 이유 모를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렇게 한 없이 인간이 낮아지는 방식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저는 그가 사지가 멀쩡하단 이유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을 믿은 내가 바보였을까, 누가 들으면 순진하다고 혀를 차겠지. 제가 돈을 건넨 행동은 그들을 돕지 말라는 목소리와 치열하게 싸운 후 용기를 낸 것이었기에 배신감까지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 동안 그 길로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다시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제가 순진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걸까요.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스스로를 다독인 후 저는 다시 지하철역 출구에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는 분들의 돈통에 돈을 넣습니다.
구걸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자존을 더없이 내리고 수치심을 지독하게 견디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목적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고, 아마 제가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겁니다. 내가 가진 만원이 누군가에게는 더 값지게 쓰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제 생각도, 그 목적도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요. 아니면 그들을 또 한 번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