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 '앎' DAL 번외편
책과 명상으로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된 6인이 에세이 레터를 발행합니다. 이름하여 레터 "앎". 이름 한번 거창하지요? 저희가 써 내려간 내용들은 어쩌면 내가 이것밖에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모른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저희들이, 살며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을 나눕니다. 함께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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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eam ANDA로 함께 레터 발행을 하는 친구 썬과 이혜, 물을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이때다하고 물었죠.
"그런데 우리 정체가 뭐예요?"
"정체요? 몰라요. 하하하"
지금은 같이 에세이 레터를 쓰기로 했기에 '레터 발행하는 친구'로 표현하지만 다른 이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늘 가관입니다. '누가'를 설명하는 말 앞머리는 왜 있잖아, 그때 그랬다고 한 분, 2년 전 새벽에 같이 독서모임 하셨었고로 장황하게 시작되요. 한 사람을 소개하는 데 언어의 경제성이 이렇게나 떨어지다니요. 이러다가는 해가 지날 때마다 3년 전에, 4년 전에, 5년 전에 라며 그들을 소개할 판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한 마디 말로, 특히나 직업으로 소개하길 꺼려하는 저였기에 더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모임이름은 뾰족하게 떠오르는게 없어 그때마다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불려졌습니다. 만나는 시간을 강조한 '꾸준히 독서하기 새벽반'이나 글에 혼을 담아보겠다며 지은 '우주적글쓰기모임'같은 것으로 말이죠. 어느 날 제가 모두에게 파란 요술봉을 선물했던 날에는 '요술봉클럽'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22년 첫 온라인 모임 때의 우리들과 닿아있습니다. 모임 첫 몇 달은 저, 이혜, 숲 이렇게 3인이 모였고 책 <일의 격>에 있는 질문들로 '나'에 대해 고민해 보던 때였어요. 이혜가 ‘스스로를 표현할 딱 맞는 명사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고 저와 숲은 저도요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혜는 보통 그때 하고 있는 일들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동사형 인간'인 것 같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동사형 인간’은 무언가를 늘 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미완인, 그래서 좀 부족한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말에 나도 그래라고 하면서도 마음속엔 '명사형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어요. 제게 명사형 인간은 완성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죠. 저는 명함이나 프로필에서 명사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소개가 좋았습니다. 보통 직함이나 학력, 자격들로 표기되는 그것에 열망이 있었나 봐요. 모임을 시작하며 저는 이 시기를, 이 미완의 느낌을 다 같이 벗어나보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여느 모임들처럼 글쓰기와 책 읽기로 시작한 주 1회 모임은 23년 중순까지 이어져 44주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읽은 책은 몇 권 안 되고 글도 쓰다 흐지부지되고, 뭐 아웃풋이라곤 남은 것이 없었어요. 그냥 우리들만 남았습니다. 매주 새벽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또 스스로가 했던 이야기를 반추했습니다. 특정한 주제는 없었지만 이야깃거리는 늘 다양했습니다. 시간이나 감사 같은 추상적인 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부터 일 잘하는 법이나 멋진 인간관계 만들기 같은 갓생 사는 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경청과 공감이 함께했고 자기 비하, 타인에 대한 험담은 없었습니다. 누가 묻지 않는 이상 조언도 하지 않았어요. 극 성취지향형 인간이었던 제가 이런 아웃풋 없는 모임을 지속하다니 이상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부턴가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과 새벽에 얼굴을 맞대고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그 시간이 곧 의식으로 전환되는 것 같았어요. 혼자의 힘으로는 '의식하지 못해 무의식으로, 결국 내 운명이 되어버릴' 생각들이 수면 위로 끌어져 올라오는 경험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비판 없이 내게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동사형 인간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글쓰기 모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저는 '출간작가'같은 명사형 성과를 얻어내진 못했습니다. 프로필에는 '매주 금요일, 새벽 모임을 44주 동안 이어갔습니다'같은 맹맹히 문장만을 쓸 수 있겠고요. 하지만 그 한 줄,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스스로가 밉지 않은 제가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저 한 줄이 당당한 위엄을 갖게 하는 선명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결과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동사형 인간도 제법 멋지다는 것도요. 내가 알아줌으로 그 때의 시간들과 동사형인간인 내가 나름의 위용을 갖췄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가 무엇이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일이나 연애, 육아 같은 각자의 삶들이 진행되고 나름 시작과 끝이라고 명명한 순간들 속에서도, 자주 그 의미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서로 묻습니다. 이거 모르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모름의 안갯속 구간에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새벽시간은 저에게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하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동사형 인간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덤이었고요. 그 사람들이 '6인 7각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떠올라 조용히 웃습니다. 뒤뚱거리다 넘어지면 같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7각이 착착 맞게 달리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재미있게 휘청거리며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길 바랄 뿐입니다. 과정 속에 결과와 맺음이, 맺음속에 다시 과정이 중첩되는 삶인가 봅니다. 거의 늘 과정속에 있나보다 하며 삽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