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부모님의 압박이 심해졌다. 입학생 선서가 결정적이었다. 이제 나를 통해 꿈을 실현할 차례였다. 엄마는 나를 청담동의 소수정예 학원에 등록시켰다. 한 과목에 50만 원씩 하는 곳이었다.
학원에 가니 강남의 유명한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는 애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끝냈다는 둥, 일본 대학의 시험 문제를 구해 푼다는 둥 잘난 척을 은근히 해댔다. 나는 열등감이 생겼다. 부모님에게 그런 학원 안 다녀도 잘할 수 있다고 말해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냥 학원 애들이 꼴 보기 싫었다.
집에서 감시가 더 심해졌다. 이제 평화롭게 주말의 명화를 보는 시간은 없었다. 평일 방과 후 저녁에는 밥 먹고 밤늦게까지 공부, 휴일에는 하루 종일 공부였다. 나는 반항할 생각을 못 했다. 놀 줄도 모르고, 놀 친구도 없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몰래 텔레비전도 보고,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었다. 피곤하면 방바닥에 누워 잤다. 책상에 엎드리는 것보다 방문 쪽으로 머리를 하고 누우면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더 잘 들렸다.
감시를 피해 동네 독서실에 다녀봤다. 그래도 엄마는 수시로 몰래 독서실 안으로 들어와 나를 지켜봤다. 내가 졸고 있으면 뒤에서 갑자기 귀싸대기를 때렸다. 그래서 동네에서 유명했다.
나는 항상 잠이 부족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자습시간 내내 엎드려 잤다. 하루 종일 졸리고, 딴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별명은 ‘뽕’이었다. 눈빛이 흐릿했기 때문이었다. 내 짝은 고등학교를 1년 꿇은 형이었다. 하루는 내가 흐리멍덩하게 있자 나에게 “얼굴을 보면 반에서 꼴등 할 것 같은데, 어떻게 공부를 잘하냐”라고 했다.
학교생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머리는 박박 깎고, 매일 허름한 교복을 입고 다녔다. 얼굴은 온통 여드름이 나 곰보같이 되었다. 그래도 같은 반에 여학생이 없으니 별로 창피할 건 없었다. 여드름이 곪아서 볼거리에 걸린 것처럼 한쪽 볼이 크게 부풀어서 학교에 가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수시로 두발 검사를 했다. 불시에 들어와 자로 학생들의 머리를 쟀다. 기준이 넘으면 가위로 자르거나 이발기로 머리 일부를 밀었다. 쉬는 시간 복도에 가면 하얀 두피가 보이는 학생들이 종종 보였다.
수업에는 교련이 있었다. 흰색 바탕에 검은 얼룩이 들어간 교련복을 입고, 군화를 신었다. 나도 베레모를 쓰고 모형 총을 들고 운동장에서 제식훈련을 배웠다. 군인 출신 교사는 마치 군대인 듯 운동장 구령대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면 나는 교련교사와 악연이 많다. 여름방학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반장으로서 서류 취합을 제대로 안 했으니 교무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교복을 갖춰 입고, 교무실로 갔다. 교련교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대머리에 금색 안경을 썼는데, 키는 작지만 넓은 어깨와 팔에 근육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교무실에 있는 그의 자리 앞으로 가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왜 반장 노릇을 똑바로 못해”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바로 서서 얼굴을 내밀라고 말했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다. 갑자기 그는 불끈 쥔 큰 주먹을 내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나는 왼쪽 뺨에 그의 주먹을 받았는데, 순간 정신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엄살 부리지 말고 다시 똑바로 서, 이빨 꽉 다물고”
나는 어지러웠지만 숨을 가다듬고 다시 그의 앞에 섰다. 이를 악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순간적으로 다시 내 앞의 세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하루는 늦잠을 자 지각을 했다. 나는 당시 체중이 10kg 정도 불어 있었다. 그래서 교복 바지의 허리가 잠기지 않았다. 교복은 입학할 때 받으면 다시 구하기 어려웠다. 나는 큰 치수의 비슷한 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날은 운이 없게도 교련 선생이 지각생을 혼내는 날이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수업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오자, 교련교사는 한 명씩 매타작을 시작했다. 나는 10분 늦은 무리에 있었기에 엉덩이를 10대 맞아야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교사는 있는 힘껏 몽둥이를 휘둘러 나를 때렸다. 나는 엉덩이 맞는 정도는 일상이기에 참을만했다. 그렇게 한참을 때리던 교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 교복도 안 입었네”
그는 정해진 횟수를 넘어 마구 때렸다. 나는 엎드린 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교사는 더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섭고, 화가 나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 교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교복이 안 맞아서 그러는데 어떡해요”
그러자 그는 내 뺨을 때리고, 발로 나를 찼다. 나는 뒤로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교사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참을 맞다가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잘못했다고 말을 해서야 끝날 수 있었다.
나는 학교가 싫었다. 나는 학급에서도 마음 나눌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냥 다 경쟁상대일 뿐이었다. 점심시간에는 학교 구내식당에 혼자 가서 대충 밥을 입에 넣었다.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논 것도 아닌 시간만 때우는 시기였다. 지금도 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까맣다. 암흑 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