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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14. 2019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지

나는 오랫동안 시계를 보지 않을 것 같아

서안지안. 아마도 오늘 밤, 너희가 잠든 사이에 가을이 가버릴 것 같아. 내일이면 겨울이 와 있어서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겨울은 코끝이 찡해지는 계절이야.


너희들과 함께한 세 번째 가을은 무척 행복했단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지. 우리는 날마다 시계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해가 떠오르고 저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생각했지.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순간'이라는 시간을 함께 배웠던 것 같아.


매일 너희를 데리러 갈 때 나는 조그만 사탕을 주머니에 챙겨 가. 만날 때마다 달콤하고 귀여운 걸 하나씩 꺼내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 하루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자 너희가 '사탕!'하고 동시에 소리쳤어.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것도 없어." 그랬지.

그러니까 지안이 "아니야. 아무것도 있어." 말하더라,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무것도 있는 그 순간이 쿵, 하고 행복했어.


사탕을 물고 뛰어가는 너희들 뒤를 따라 걸으며 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모든 순간이 그리워졌어. 너무 행복해서 울 것 같은 마음으로 너희가 주워온 꽃이나 이파리 같은 것들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어왔어. 너희가 잠들었을 때 좋아하는 책 사이에 끼워 두었단다. 어떤 책인지는 나만 알고 있.


순간을 간직하는 법은 모르지만, 순간을 그리워하지 않는 법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도 오랫동안 시계를 보지 않을 것 같아. 지금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끄럽게 즐겁게 지내다가, 다음 가을이 오면 같이 책장을 펼쳐보자. 거기에, 아무것도 있을 거야. 우리의 순간이었던 그 어떤 것이.


191113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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