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을 던졌다. 찰박, 하는 마찰음이 울리고 나서도 그녀는 구부린 상체를 펴지 않는다. 우물 속에 무언가 빠트린 것일까. 물속으로 곤두박질이라도 치면 어쩌나. 나는 조바심을 내며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그때서야 몸을 일으켜 밧줄을 까딱거렸다. 두레박에 물이 차오르면 오른손으로 잡아당긴 밧줄을 나무토막 같은 다른 손으로 세게 누르고 끌어 올렸다. 그녀는 기어갈 때마다 뼘을 재는 자벌레처럼 당기고 펴기를 반복했다.
손모가지가 부러지고 보니 새삼 그녀의 손놀림이 떠올랐다. 깁스를 할 때만 해도 심각하지 않았다. 이깟쯤이야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손으로는 무엇 하나 수월한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치약을 짜거나 머리를 감을 때도 두 손이 보조를 맞춰야만 했다.
그녀는 내가 열 살 무렵 우리 마을로 시집을 왔다. 혼례복을 입은 신부는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고 좁은 방에 들어앉아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얄브스름한 눈이 슬퍼 보였다. 초례상 위 보자기에 싸인 장닭이 푸드덕 거리자 식이 시작되었다. 한삼으로 얼굴을 가린 신부가 수모의 부축을 받아 문지방을 넘어섰다. 마당으로 향하는 걸음이 뒤뚱거렸다. 때를 만난 듯 사람들이 수근 거렸다.
“어렸을 때 소달구지를 타다 떨어졌닥합디다. 그때 겁나 다쳐갖고 한쪽을 못쓰게 되부럿는갑든마.”
나이 많은 신랑은 어리고 곱상한 신부를 맞으며 연신 벙글거렸다. 신부는 식을 치르는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식이 끝나고 함께 따라온 친정 오빠들이 떠나갈 때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맑은 날 작달비 같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마당을 뛰어다니는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신부 주변을 맴돌았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냇가 앞이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로 납작 엎드린 초가지붕이 보였다. 그녀는 우리집 뒤란으로 물을 길러 왔다. 납작한 탱자가시처럼 구부러진 손과 절뚝거리는 걸음걸이가 잘못이라도 되는 양 늘 눈을 내리깔고 다녔다. 나는 울타리 위로 둥둥 떠가는 물동이가 보이면 우물가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물동이를 채운 그녀는 머리에 똬리를 얹고 동이를 일 때면 나를 불렀다. 간절하게 잡아달라고 내민 손 같았다. 물동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흘러내린 물이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나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왔다. 방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그녀 집으로 달려갔다. 한 손으로 내 단발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에게 탱자향기처럼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나 없는 동안 물동이를 어떻게 얹었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돌았다. 부모 품을 떠난 나처럼 그녀도 외로웠을까. 물을 길러 올 때면 우리는 토방에 걸터앉아 거름더미를 헤집는 닭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느 해 그녀의 배가 불러 있었다. 애타게 아기를 기다리던 그녀의 얼굴이 탱자나무 꽃처럼 수줍게 피어났다. 생명수를 길어 올리듯 두레박질도 기운찼다. 나는 아기를 보러 그녀 집에 가곤 했다. 허름한 집은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지게 깔끔했다. 우듬직한 소나무에 매단 빨랫줄에는 승리의 깃발처럼 기저귀가 펄럭였다. 그녀는 한손으로도 제 울타리를 너끈히 건사했다.
온전한 아기를 낳으므로 기울어진 한쪽 몸을 얻게 된 것일까. 포대기에 아기를 들쳐 업고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아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물을 길러 와도 나와 눈 맞춤도 않고 바삐 돌아갔다. 울타리 너머에서 아기의 옹알이에 섞인 그녀의 웃음소리가 수시로 들려왔다. 창창한 가시 속에서 꽃망울이 툭툭 터지는 소리 같았다. 그들을 감싸고 도는 완벽한 충만감에 나는 슬그머니 샘이 났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고향에 가는 횟수가 뜸해지면서 우리는 서로 데면데면 해졌다.
귀신도 뚫지 못한다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우환이 쳐들어왔다. 허약하던 남편이 앓아 눕더니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남매가 한창 자라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탱자꽃봉오리처럼 파리해졌다. 얼마지 않아 그녀마저 일어설 수 없는 병을 얻었다. 소식을 들은 나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우물가에서 잡아달라고 내민 손이 떠올랐지만 불운한 운명을 차마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잎이 진 앙상한 울타리를 따라 그녀의 빈 집을 찾았다. 제멋대로 뻗은 탱자가시가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다. 방문을 여니 그녀가 끼고 살던 성경책이 보였다. 가시투성이인 세상에서 갑옷이 되었던 책은 너덜너덜 닳아 있었다. 병문안을 미루는 사이 그녀는 생의 두레박질을 멈추고 말았다.
두 달 만에 부러진 손목에 깁스를 풀었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고 밀린 때를 벗겨냈다. 연한 피부는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리고 손가락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친 그녀의 손도 이렇게 굳어 갔을까. 마지막 가는 길에서조차 뿌리쳤던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듯 굳은 손 위에 오른손을 올려보았다. 그녀가 하던 대로 손목을 살살 문질렀다. 살갗이 스칠 때마다 탱자 꽃 같은 그녀와의 추억이 가시처럼 박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