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쿤의 배 아픈 추억

바나나 고추의 얼굴을 한 그대의 이름은....

by 달라스 Jasmine


잠깐 옆길로 새서 영주권 나온 기념으로 간 캔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일본회사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삼성에서도 H-1 비자 (working visa)로 일을 시작하고 영주권으로 넘어가는 조건이었는데 MBA를 했기에 대학원 졸업자 영주권은 약 2년이 소요되었지만 , 월급을 너무 많이 줘야 해서 안된다며 나는 대학교 졸업생으로 영주권을 진행하게 되어 약 5년이 걸린다고 했다. 이민 법률이 시시각각 바뀌고 H1쿼터 수량이 제한적이라서 그 당시 영주권을 따는 건 무슨 복권 당첨되는 확률이었다. 나는 법률이 바뀔 때마다 요리조리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늦춰졌는데 내 손가락 지문 때문에 제동이 걸릴 줄이야…

영주권 서류 심사가 통과되고 드디어 지문을 찍어야 했는데…

도대체가 내 지문이 찍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민국 지문 찍는 직원이 내게 도대체 직업이 뭐냐고?

무슨 막노동을 하는 건지 왜 지문이 닳아서 없냐고…

한국에서 카피라이터로 주구장창 컴퓨터 타자를 두드리고 미국에 와서도 공부하느라 리포트 쓰고 또 취직해서는 보고서에 계속 컴퓨터 키보드와 사투를 벌였으니…

그 새 내 지문이 다 닳았던 것이다.


회사에 가서는 제임스 차장님께 볼멘소리를 했다. 저 업무과다로 지문이 다 없어졌대요. 회사 상대로 고소할까 봐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까짓 지문 없어진 건 약과였다. 제임스 차장님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셨으니… )

6개월인가를 기다렸을까. 결과는 보기 좋게 REJECT! 지문이 안 찍혀서 다시 찍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한국에 나갔을 때 친구와 친구 딸과 식사를 하던 중 내 지문 닳은 얘기를 했더니 친구딸이 너무 신기해했다. 아직까지도 난 지문 없는 이모로 통한다.

이렇게 내 손가락 지문까지 말썽을 피워서 미뤄진 영주권이 나오기까지 무려 7년이 넘게 걸렸는데 우린 이 역사적인 순간을 자축하고자 캔쿤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E부장의 이기적이네 뭐네 하는 핀잔을 뒤로한 채 떠난 캔쿤은 지상 낙원이었다.

식사, 술까지 모두 포함된 All inclusive에 마침 남편 생일이라서 식당 직원들의 축하도 받으며 조촐한 생파도 하고 행복한 며칠을 보냈고 어느새 달라스로 돌아갈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날 아침 우린 조식으로 뷔페를 먹고 해변을 걷기로 했다.

난 평소에 좋아하던 바나나 페퍼가 있길래 접시에 담아와서 한입 베어 물었는데

으악. 샛노랗게 예쁜 바나나 페퍼에서 흘러나온 즙은 내가 생각한 그 달달 새콤한 맛이 아니었다.

배신이었다. 그것도 지독히 매운!

입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내 엄지 손가락 만한 내가 바나나 페퍼라고 생각한 그 녀석을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는데…

그 순간 지지지지 내 식도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짧았던 몇 초 사이 내 목에서 위장까지의 불과 30센티도 되지 않는 그 짧고 좁다란 통로는 마치 성난 용암을 마구마구 분출해 내는 활화산 같았다.

난 화장실로 달려갔고 내 몸속 모든 구멍에서 수분이라는 수분은 다 토해내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았고 멀미할 때처럼 입에서 침이 주르륵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내가 이 지상 낙원 캔쿤에 와서 죽는구나 싶었다.

911 아니 이곳 멕시코는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나. 빨리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전화기를 식탁 위에 두고 와서 남편에게 전화를 할 수 도 없었고 난 혹여나 나를 구해 줄 누군가가 있을까 싶어 불러보았다.

Hello! Anyone here? Hello?

적막만 흘렀고 그 누구도 없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까지 아팠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한 20분이 지났을까. 몸속 모든 수분을 게어낸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당으로 돌아갔고 아내가, 엄마가 왜 사라졌는지 꿈에도 모르는 무해하기 그지없는 해맑은 미소로를 띈 채 아빠와 아들은 물었다.

어디 갔었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비웠는데 찾으러 와보지도 않은 그들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

내가 먹었던 건 바나나 페퍼가 아니라 한때 세계 매운 고추 서열 1위였던 하베네로 고추였다는 걸 멕시코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함께 온 아들 친구의 아빠한테 전해 들었다.

아마 장식용으로 놓여 있었던 것 같다고.

그분이 유창한 스페니쉬로 주문해 주신 약과 우유를 마시고 해변 걷기는 포기한 채 종일 방에 누워 있었다. 다음날이 캔쿤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 매운 하베네로 고추 사건이 캔쿤에 도착하자 마자가 아닌 끝무렵에 일어난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몰랐다. 아픈 위장을 움켜쥐고 미국에 복귀하고 난 결국 urgent care에 가서 위장이 몹시 망가졌다는 의사의 진단을 전해 들었다.

내 하베내로 사건을 무슨 무용담처럼 전하던 내게 평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훗날 나의 보스가 된 A가 무심히 한마디 던졌다.

Usually people spit it out not swallow
(보통 그럴땐 뱉죠. 삼키는게 아니라)

하베네로 꿀꺽 사건 이후 난 아직도 하베네로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내 미국 친구들에게도 하베네로 사건은 유명해져서 내 친구 남편이 사진을 찍을 때도 치- 즈 대신 ‘하베네로”하고 나를 놀리기도 했다.

내 몸을 활활 태운, 결국 위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내버린 그 하베네로가 내 영혼을 갉아먹고 청춘을 송두리 째 앗아간 삼성과 너무 닮아 있었음을 깨닫는데 무려 8년 반이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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