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로 보는 공정한 나눔
교차로 신호등 앞에 대기해 있을 때, 파란불이 켜지기 전에 튀어 나가거나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를 가끔 본 적이 있는데, 주로 고급차였지 싶다. 아마 부자들의 이기심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의 생각에 ‘옳소!’ 하며 편을 들어준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버클리대 심리학과 대처 켈트너(Dacher Keltner) 교수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차의 가격이 높을수록 교통 법규를 어길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이다. 그는 보행자가 있으면 멈춰야 하고, 보행자가 없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보행자 우선 구역에서 차들이 얼마나 정지선을 잘 지키는지, 어떤 차들이 보행자를 기다리지 않고 교차로를 지나가 는 지를 확인했다. 저가 차량의 운전자들은 100% 멈춰 섰고, 고급 차량의 운전자들은 45%가 넘는 확률로 보행자 우선 구역을 지나쳤다고 말한다. 자동차 가격과 교통법을 지키는 것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그는 부와 특권을 가진 사람일수록 규정과 법률을 어길 가능성이 높고 부유할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지난 3월 30일에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1부/돈>에서 공개됐다.
요즘 밥 먹고 아내와 동네 한 바퀴 걷는 것이 오후 일과다. 여기저기 걷는 사람이 많아진 것을 보니 모두들 집에 만 있기가 답답한 것 같다. 아내와 가까이 걸으면 저만치 경계를 하며 이내 길을 틀어 가는 이도 많은데, 눈치를 보며 대화를 나눈다. “여보, <코로나 19>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는 어떻게 될까?” 아내는 “그걸 당신이 왜? 걱정해.” 하는 표정을 하면서도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사람들의 돈 문제야.” 한다. 며칠 전 본 다큐프라임 <돈>에서 그 미래를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뇌 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자본주의 시대, 우리의 뇌에 돈이 차지하는 공간은 점점 커지지만, 뇌는 돈을 다루는 데 허술하고 엉성합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을 본능적으로 역겨워하고 혐오합니다. 우리 인간은 돈에 대한 탐욕만이 아니라 공정한 나눔의 미덕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돈을 향해 달려가는데, 모두가 돈을 잘 벌지는 못한다. 돈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앞선 자들을 ‘부자’라 한다. 그중에서도 더욱 우세한 자들이 이른바 '슈퍼 리치(Super Rich)‘이다. 어떤 사람이 슈퍼리치일까? 매경이코노미의 박수호 기자에 따르면 “현금성 자산 100억 이상, 당장 10억 정도는 유동 자금으로 가지고 있고, 롤스로이스 정도의 차에 한 달 밥값으로 1400만 원 정도는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돈이 많은 게 무슨 문제가 되지? 하겠지만 문제는 슈퍼 리치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진 자들 주위에는 ‘예스맨’이 많아 사람들을 동등하게 만나기보다는 위에서 내려 다 보는 생활에 익숙하고 좋아하는 얘기만 듣다 보니 공감 대신 자기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우리 사회의 ‘CEO 갑질’ 사건을 만드는 원인이다.
흔히들 바이러스는 공평하다고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안전한 격리를 할 수 있고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감염 위험에도 출근해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계층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일종의 <코로나 19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졌다”라고 보도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부의 불평등이 표출될 것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은 각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안전한 격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혹시 감염이 된다고 해도 부담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생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다르다. 당장 먹고 살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감염보다 돈 버는 일이 더 중요하기에 감염의 위험 속에 일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