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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식인간
by 수진 Jul 01. 2018

세상을 멸망시킬 건 분명 말일 거야



내가 예전에 기자로 일했던 매체는 SNS를 기반으로 젊은 층들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기사를 쓰는 곳이었다. 독자층이 어렸기에 정치나 금융 기사보다는 연예, 사건사고, 뷰티, 게임 기사를 쓰는 게 트래픽이 더 잘 나왔다. 막연히 쓰면서 벌어 먹고 싶고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택한 곳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곳은 생각 없이 다니기에는 좋은 회사다. 열린 문화, 자유로운 분위기에다 사원들 모두 20~30대 젊은 계층으로 이루어졌고 트래픽만 잘 나오면 무엇을 소재로 기사를 쓰든 좋았다.


그런데 나처럼 트렌드와 동떨어져 살았던 이력이 있고 남 이야기 소문 내는 거로 먹고사는 게 불편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직장이었다. 거기다 짧고 휘발성 강한 글이 주를 이루는 곳.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을 회사를 다녀 보고 나서야 알다니.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독설, 느린 손, 사수의 한숨, 트래픽 눈치 보기…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 게 했던 건 ‘악플’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어 본 적 있다.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이 참다 못해 고소를 하는 것처럼 기자들도 악플러들을 모아 고소하고는 한다고. 하지만 기자는 ‘기레기’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답게 하는 일에 비해 대우를 못 받고 오히려 눈엣가시 취급을 받기 쉬운 직업이라 그렇게 대처해도 오히려 또 욕을 먹는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기레기’가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사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기사를 다른 플랫폼으로 퍼 나르는 과정에서 타의적으로 기사에 등장하는 대상자를 불쾌하게 하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그 대상자는 내 기사와 실명을 언급하며 나와 매체를 비방하는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올렸다. 당시 팔로워만 70만 명이었던 사람. 나를 향해 약 1500개의 악플이 달렸다. 회사 SNS로 도대체 그 기자는 하는 일이 뭐냐, 그 기자는 할 일 없이 마우스만 깔짝대며 낄낄거리다 대충 기사 쓰는 것 같은데 회사 측에서 자르면 안 되냐 하는 욕이 쏟아졌다.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이렇게까지 비난받아 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쓰지도 않은 문구가 트리거가 되어 대참사가 벌어졌지만 다들 쉬쉬 하며 넘겼다. 사수는 “이런 걸로 일일이 상처받으면 여기서 일 못 해요.”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이미 그곳에서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담담히 받아들이고자 했지만 퇴근 후 집에 올 때마다 또 어떤 악플이 달려 있을까 확인하고는 했다. 나에게 배달된 더러운 오물이 담긴 통을 매일 열어 일부러 냄새를 맡아 대는 꼴이었다.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분한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게 억울하고 싫었다.


퇴근하면 어김없이 나를 대상으로 한 악플 창을 켜고, 그러지 않기 위해 다음 날 기삿거리를 찾고, 푹 쉬지도 못한 채 일어나 또 기사 건수를 채우기 위해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일하고, 기자니까 주말에까지 일하고… 쪽팔려서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말이다.


가장 우스웠던 건 나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더러운 욕을 내뱉은 사람 대부분이 나이가 어렸다는 점이다. 그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나는 나보다 한참은 어린 녀석들의 말에 매일 밤 휘둘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살고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른다.


지금이야 그런 애들이 하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니 정말 웃기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나는 그 회사에서 결국 퇴사하고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상담한 변호사 말로는 충분히 고소감이 되기 때문에 악플을 단 사람도 악플을 달게 영상을 게시한 사람도 모두 고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경찰들의 말은 달랐다. 악플 따위의 귀찮은 일을 떠맡기 싫어서 고소가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울며 호소하자 “어쨌든 그쪽이 기사를 쓴 게 잘못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외국에는 ‘모욕죄’라는 게 없어요. 걔네들은 쿨하게 넘겨요.”라며 괜히 외국 얘기를 하지를 않나 어거지로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될지 안 될지 장담 못 해요.”라고도 했다.


영상 게시자에게 정중한 사과와 함께 오해를 푸는 메일을 보냈지만 그의 논리도 경찰과 같았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찌 됐건 애초에 자신을 건드린 당신이 잘못했다며 매우 일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내가 고소장을 보여 주자 바로 영상을 내렸다. 우린 서로 각자의 상처만을 부르짖었다. 한편의 코미디와 다름없었다.


문득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밀물처럼 밀려들던 허무함은 해일처럼 커져 분노를 덮어 버렸다. 다 귀찮고, 다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모든 고소를 취하했고 한동안 심리 상담을 다녔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쪽팔리고 한심해 이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악플은, 정말이지 당해 보기 전까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 말, 말에 대한 생각. 말에는 힘이 있다. 아주 큰 힘. 아빠는 늘 “말을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누군가는 좋은 말을 들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쁜 말에도 상처를 덜 받는다. 반대로 누군가는 좋은 말 하나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고 나쁜 말 하나에 미친 듯이 사로잡혀 쓸데없이 깊게 땅을 판다. 누군가는 “나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누군가는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스토킹한다. 누군가는 독설을 내뱉고 나서도 따뜻한 말을 원한다. 우린 모두 좋은 말에 굶주려 있지만 결핍될수록 바보 같고 상처되는 말만 더 쏟아 낸다. 무서워서 입을 뗄 수나 있을는지, 귀를 열 수나 있을는지.


누군가를 욕하고 헐뜯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쉽다. 말을 배우는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것에는 어떤 노동력도 들어가지 않는다. 틈만 나면 남에게서 흠집을 찾아내고 남을 열심히 헐뜯는 사람은 입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게으름뱅이다. 언제 어디서나 관심이 필요한 관심 종자다. 그들이 만약 이력서를 쓴다면 특기란에 ‘남 상처 주기’를 써야 할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그들만큼 싫어하는 사람은 험한 말을 듣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말에 소모하는 감정이 아깝다 말하는 이들. 과거에는 나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그냥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악플에 시달려 고소장까지 접수해 보니 알겠다. 험담은 험담을 한 주체가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다. 험담은 그 자체로 날이 달린 무기다. 우리가 식칼로 양파를 썰다 손이 베였을 때 ‘이 식칼은 어디에 사는 누가 만든 식칼이길래 내 손을 다치게 한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식칼의 유래가 어떻든 이미 손가락은 다쳐서 상처를 입었다. 한번 일이 벌어지면 되돌릴 수 없다. 험담을 들어도 내 가치는 변하지 않겠지만 마음은 이미 상한 것이다. 무차별적인 칼부림에 자존감과 기분이 난장판이 되어서 수습할 수 없다. 어떻게 바로 그 순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사람마다 마음의 방어력은 너무나 제각각인 것을.


자존감이 낮고 예민한 사람일수록 말에 영향받는 정도가 몹시 커지는 것 같다.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고 혹시나 내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일수록 상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민감한 법이니까.


나 또한 나쁜 말을 크게 받아들이고 좋은 말 하나에 감정 기복이 커지는 사람 중 하나. 그렇기에 악플 테러를 당해 회사를 퇴사하기도 하는 반면 “수진 님은 누구보다도 잘할 거예요.”라는 말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 충성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나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어째서 좋은 말을 하는 건 어렵고 나쁜 말을 하는 건 쉬울까. 인간은 왜 이렇게 진화했을까. 좋은 말을 잘하도록 진화해야 인류의 융성에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무심한 경찰들과 맞서 울다 지쳐 모든 걸 체념하고 고소를 취하할 때 한 여경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우리는 처벌을 내리는 사람이에요. 전과자를 만드는 일이요. 그쪽에게 필요한 건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일 뿐이고요. 사실 그냥 그거면 되는데 말이에요.” 미안하다 한 마디를 듣는 것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더 쉬운 세상. 쉽게 상처받는 사람은 상대의 처지가 어떻든 무조건 처벌해 달라고 할 만큼 독하지도 않아서 두 배로 힘들고 억울하다.


나는 인간의 말이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나는 입조심을 하며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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