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눌라(Cronulla)
일을 관두고 혼자만의 시간이 펑펑 생겼던 때쯤, 한국의 육지인간으로서 호주에 있는 바다는 최대한 많이 떠나보기로 했다. 내가 살았던 시드니는 바다와 근접해 있어 바다를 보러 가기가 꽤 쉬웠다. 구글맵을 켜서 해안가를 쭈욱 확대하다 보면 크고 작은, 재밌는 이름의 비치들이 군데군데 있으며 버스나 기차를 타면 한 시간 이내로 그곳 해변 앞까지 갈 수 있다.
사람들에게 유명한 본다이, 쿠지, 맨리 비치는 이미 여러 번 다녀왔던 데다 사람들이 대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가기가 꺼려졌다. 그러던 중 시드니 남쪽 부근에 위치한 크로눌라(Cronulla) 비치를 지도에서 발견했다. 당시 살던 곳에서 기차를 타면 환승 없이 갈 수 있었고 시간도 40분 정도면 됐다. 오늘은 여기구나하고 별 고민도 없이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내려 플랫폼을 나오자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역에서 비치로 향하는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나는 이곳이 내 인생 힐링 장소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이 아름다움을 한 폭의 그림에 담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서핑을 하는 사람, 모래 위 햇살을 만끽하는 사람. 모두 다양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평안하고 재밌어 보였다. 파도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이런 편안한 여유로움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주위에 한참을 앉아서 파도를 바라보다, 사람들을 바라보다 했다.
저 멀리서 온몸으로 파도를 타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는 좋아하는 작가님의 좋아하는 말도 떠올려 보았다. 사실 이때는 내게 오는 모든 파도가 좋은 파도여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파도에 깎일 때마다 더 아파했다. 파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니 자꾸 어딘가에 더 처박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또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괴로워하고… 그런 못된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마음이 힘들 때면 나는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또 가만히 파도를 바라보거나, 파도를 들었다.
아직도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상처받고 아파하지만 전처럼 무작정 그것을 통제하려 하지는 않는다. 조금씩 ‘내일은 좋은 파도가 오겠지’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중이다. 어쩌면 값진 인내이거나 조금 슬픈 체념일 수도 있는 말. 이 말을 이해했다고 하는 데에는 아마 평생이 걸리지 않을까?
지금은 기차만 타고서 바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언제든 돌아가서 위로받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