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감이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
“오늘은 뭐 먹을까?”
남편에게 퇴근 시간이 다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슬쩍 운을 띄워두고 재빨리 냉장고 속 식재료를 떠올렸다. 매일 저녁 식사 메뉴를 정하는 건 꽤 귀찮은 일이다. 누가 대신 정해주면 좋겠다, 싶다. 저녁때가 돌아오면 엄마들이 ‘오늘은 뭘 먹나?’ 고민하던 마음을 이제는 백번 이해할 수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짠’하고 저녁밥이 차려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집밥은 늘 좋다. 좋아하는 두부를 듬뿍 넣고 청양고추를 살짝 곁들여 ‘화르르’ 끓여낸 엄마 된장찌개만 있으면 더는 바랄 게 없었다. 반찬은 없어도 괜찮았다. 된장찌개만 떠먹기에도 밥 한 그릇이 부족했다. 비가 오는 날은 손으로 반죽을 뚝뚝 떼어 넣은 수제비, 많이 피곤한 날엔 무쇠 솥뚜껑에 구워낸 삼겹살, 뭘 먹을지 고민스러울 때는 무조건 떡볶이다. 타지생활을 하다 힘에 부칠 때면 엄마 음식을 떠올렸다. 엄마 밥은 내게 ‘쉼’이었다.
이런 경험을 아이와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세 식구가 둘러앉아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저녁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서툴지만, 직접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싶었다. 엄마의 정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쁘게 움직였다.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가방은 던져놓다시피 내려놓고 서둘러 손을 씻고 재료를 손질했다. 밥상을 차리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종종거리느라 땀이 흘렀지만, 맛있게 먹을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어쩌다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날에는 미안했다.
그런데, 아이는 먹지 않았다. 노는 게 좋아서 음식에 관심조차 없었다.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는 듯 보였다. 퇴근 전부터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서둘러 밥을 차려낸 엄마의 노력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씨름하는 날이 길어지자, 불쑥 화가 났다. 서운함에 목소리가 커졌고, 기어이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누구도 ‘꼭 그래야 한다’고 말한 적 없었다. ‘엄마니까…’라는 말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난 ‘엄마의 규칙’을 만들어 스스로 옥죄이고 있었다. 하루에 한 끼는 꼭 직접 요리할 것, 사용한 그릇은 바로 설거지할 것, 집은 정돈된 상태를 유지할 것, 빨래는 그때그때 세탁할 것…. 끝없이 역할을 부여했다. 마치 이런 것쯤은 능숙하게 해내야 좋은 엄마인 것처럼.
이것만 해놓고 안아줄게. 응,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밥을 해야 얼른 먹고 재미있게 놀지! 잠깐만, 응?
아이가 원한 건 밥이 아니었다. 온종일 보고 싶었던 엄마, 아빠의 온기가 고팠다. 어린이집도 단체생활을 하는 작은 사회라서, 집에 와선 어리광도 부리고 싶어 했다. 엄마, 아빠가 퇴근한 이 시간만큼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해주길 바랐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스스로 만든 규칙 때문에 스트레스와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날엔 애꿎은 남편에게 짜증의 화살을 날렸다.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차린 밥상은 아이에게 쉼도, 정성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퇴근 후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세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동안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 우리 가족의 애정 전선을 위해 고집부려선 안 된다는 걸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을 고쳐먹으니 또 다른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포장을 뜯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가정간편식, 유명 맛집의 음식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픽업 서비스, 소규모 가정을 위한 소분 포장 식재료까지, 없는 게 없었다. 왜 이제야 눈을 떴을까, 너털웃음이 났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라고. 좋은 선택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선택과 집중 공식은 워킹맘에게도 적용됐다. 요즘 퇴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이 안아주기다. ‘엄마, 그만~!’할 때까지 끌어안고 있으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이 글은 조선뉴스프레스 온라인 매체 '마음건강 길(mindgil.com)'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