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는 성공, 본인은 삭제
"곧 짤릴 것 같아~"
이 말을 신랑이 처음 꺼낸 게 벌써 2년 전이다.
이쯤 되면, '내 주식만 빼고 전부 다 오른다'는 연례행사 멘트처럼 들린다.
계절이 바뀌듯, 회사 얘기도 철 따라 그렇게 돌아왔다.
나는 늘 같은 반응으로 답했다.
달래듯 감정은 살짝 얹고,
생계는 정확하게 챙겼다.
"어떡해~~ 많이 힘들겠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요.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진심.
" 근데 있잖아,
당신이 그만두면 절~대 안돼. 반드시 잘려야 해~"
신랑이 나를 쳐다본다.

"그래야 실업급여를 주거든.
돈 받으며 쉬는 거야~~ 실업급여 나오면 우리,
빚을 내서라도 한 달간 여행 가자"
위로는 형식이고,
계산은 정확했다.
내가 보기에 신랑은 걱정 인형이고,
신랑이 보기에 나는
걱정이란 기능이 태어날 때부터 삭제된
천하태평 인간이다.
물론, 신랑이 회사에서 외줄 타기 인생을 살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신랑은 UX&UI 디자이너다.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하고,
작은 전화기 하나로
은행도 가고, 택시도 타고,
관공서 일도 보고,
밥까지 시켜 먹게 되었을 때
갑자기 필요해진 사람이다.
버튼이 어디에 있어야 덜 헤매는지,
이 화면에서 사람들은 왜 도망치듯 나가버리는지,
"쓰기 편하다"는 말은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나오는 건지,
사용사의 마음은
대체 어디서 돌아서 버리는지.
그 모든 사람들의 헷갈림을 대신 고민해 주는 직업,
그리고 그 고민을
개발자들이 알아듣게
도면으로 그려주는 사람.
사람과 기계 사이에서
서로 못 알아듣는 말을
번역해 주는
통역사 같은 존재랄까.
한때는 정말 잘 나갔다.
이직은 '본인이 결정'이었고
회사는 선택을 받으려고
조용히 줄을 섰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부서 이동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이상한 공식 하나가 만들어졌다.
신랑이 부서를 옮기면,
그 부서는 사라졌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다.
두 번째부터는 농담이 됐고,
세 번째쯤 반복되자
이젠 웃고 넘기기엔
조금 무서워졌다.
미국의 감원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오늘도 평소처럼 출근했는데
사원증이 입구에서 튕겨 나가며
그제야 알게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타주로 비행기를 타고 출장까지 갔다가
공장 문 앞에서 멈춰 서서
그날의 퇴사를 맞이한다.
그렇게 2년 동안
신랑은 무려 여섯 번이나 부서를 옮겼다
그리고 신랑이 빠져나온 팀은
어김없이
통으로 증발하거나,
말 좋게 '통합' 되었다.
기적처럼 살아남은 신랑은
또 새 팀으로 가서
팀원 이름을 외우고,
이제 좀 본격적으로 뭘 해볼까 싶으면-
'다음 부서로 이동하세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짐부터 싸는 인생이 되었다.
외줄 위에 올라
앞으로는 못 가고
옆으로만 계속 이동하는,
아주 성실한 곡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AI기술 발전에 따른 감원 바람이 터졌다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아마존, 메타, 인텔, 세일즈포스 등
하루아침에 몇십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회사에서 방출되었다.
신랑은 그날도 재택근무 중이었다.
"여보~~ 나 드디어 잘렸어!"

나는 웃으며 답했다.
"축하해~, 나도 잘리고 싶네!"
"진짜야.
이번엔 진짜 잘렸어.
우리 팀만이 아니야
부사장 포함
전부 다 날아갔어.
지금만 해도
8,000명이 넘고,
이제 시작이래.
앞으로 계속해서 감원해서
만 2천 명까지 채울 거래."
순간,
축하를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말 그대로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
"수고했어요.
축하 파티하자.
이제 쉬면서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해요"
신랑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을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유튜브는 누구보다 열심히 본다 ㅎㅎㅎ

아이러니한 건
AI기술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신랑은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신기해했다.
몇백 명이 몇 달씩 해야 할 일을
AI가 단 몇 분 만에 해냈다.
신랑은 그 기술을 회사 시스템에
성실하게 심어 주었다.
그리고
1년 뒤
본인이 잘렸다.
자기가 만든 문에
자신이 밀려난 셈이다.
신랑은 반백을 넘겼다.
일할만큼 했고,
억울함을 입에 올릴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같은 팀에 있던 20. 30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야 할까?
AI라는 홍수에 떠밀려
직장도 없이
이력서만 들고 표류 중이다.
이번에 졸업하는
UX & UI 디자이너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도대체 어디서 첫 직장을 구해야 할까.
저녁에 신랑이
설거지를 하다 말고
손을 잠시 멈추더니 말했다.
“내가
UX & UI 디자이너
1세대이자 마지막 세대인가 봐."
잠깐의 침묵.
"나중에 이 직업도
버스 안내양처럼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보겠지..."
신랑은
회사 대신 부엌으로 출근하며
아주 성실하게
오늘도 살아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