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속옷은 늘 주름 하나 없이 반듯했다. 어느 날 그 반듯한 속옷에 감탄하며 비결을 묻는 여자친구에게 그는 무심코 답했다. “엄마가 맨날 다려.”
“뭐?”
비명과도 같은 물음이 돌아왔다. 나이 서른넷에 엄마가 팬티를 빨고 심지어 다려주기까지 하느냐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그게 뭐 어떠냐고 답했고, 여자는 울며 소리쳤다, 너무 불결하다고. 너 같은 남자 못 만난다고.
엄마가 아들 팬티 빨아주는 걸 불결하다고까지 할 게 있을까. 남자는 어리둥절했으나 여자와 헤어질 순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남자는 엄마에게 무심코 말했다. “엄마, 이제 내 팬티 빨지 마.”
“뭐?”
비명과도 같은 물음이 돌아왔다. “내가 빨면 엄마도 편하잖어. 그리고 소영이가 싫대.” 그의 엄마는 곧장 그 자리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예의 그 대사들이 쏟아져 나왔겠지. 아들 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 니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그 날로 그 엄마는 드러누웠다. 머리에 흰 띠만 두르지 않았을 뿐 남자의 집에는 드라마에나 나오던 바로 그 장관이 연출되었다. 밤마다 손으로 입을 막고 꺽꺽대는 중년 여인의 울음소리는, 차라리 입을 막지 않았으면 그보다는 작은 소리가 났겠다 싶을 만큼 비장하게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결국 그 아줌마의 입에서는 그년인지 나인지 선택하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하니, 그 여자친구의 ‘불결하다’는 말도 그리 과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차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자신의 월급 200만 원 중 약 70퍼센트를 엄마의 새 차 할부금, 엄마와 갔던 해외여행 할부금, 엄마 용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모아둔 돈은 0원이었고 그의 나이는 서른 넷이었다. 남편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운 여자에게 아들은 남편이고 가장이었다.
이 땅의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 땅의 어머니들을 마주하는 일도 종종 있다. 사실 그녀들과 나는 딱히 마주칠 이유가 없는 관계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주로 열여덟열아홉 먹은 수험생들인데, 과외선생도 학교 선생도 아닌 입시학원 선생과 학부모가 개인적으로 나눌 이야기 같은 건 정말이지 딱히 없다.
그러나 아들의 팬티를 다리는 류의 엄마들은 아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그녀들은 아들의 성향, 습관, 시험 범위, 성적, 등수 등의 모든 것을 나와 의논하고 싶어 한다.
주눅이(가명)네 엄마는 그 정도가 심했다. 아들을 통해 내 번호를 알아낸 그녀는 매일같이 내게 문자를 보내며 자신의 아들을 부탁했다. 학교에서 받은 학습 유인물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일도 있었다. 주눅이는 건장하고 참 잘 생긴 아이였는데, 나는 한 번도 그 아이가 웃는 걸 보지 못했다. 늘 불안한 눈망울에 그 움츠러든 어깨.
주눅이가 대학에 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늘 해왔듯 아들의 학점을 스스로 관리하고 아들의 스펙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될 것이다. 아들의 취직에 직접 발 벗고 나설 것이다. 10년 즈음 지난 어느 날에는 문자를 보내는 상대가 학원 선생에서 직장 상사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아이였다. 나는 남자가 예쁜 여자 좋아하는 마음을 일찍이 그 친구를 통해 이해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공부도 잘했다. 중학교 동창이던 그녀는 Y대 신방과에 합격했고, 대학 졸업 연도부터는 아나운서 준비에 매진했다.
공중파 아나운서 자리는 녹록지 않았고, 그녀는 스물다섯이 되던 해에 아나운서 준비를 관두고 시집갔다. ‘결혼했다’는 말보다 ‘시집갔다’는 표현이 적절한 결혼이었다. 어느 중견기업 사장의 아들과 결혼한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었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그녀의 사과 같은 얼굴로 가득했던 인스타그램은 곧장 ‘육아스타그램’이 되었다. 아들 사진이 하루에도 수 십장씩 올라왔다. 그녀의 세련된 감각과 센스는 육아에도 여지없이 발휘되었고, 위아래로 명품 옷에 손목 커프까지 하고 있는 아들의 화려한 사진들로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늘 핫했다. 하도 귀엽고 예뻐서 남의 아들내미 사진을 몇 장이나 내 핸드폰에 따로 저장했을 정도다.
그러다 어느 날 결혼 전부터 나와도 알고 지내던 그녀의 남편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그녀의 사진도 아이의 사진도 없다. 그는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지를 돌아다니며 사업 확장에 매진하는 여전히 매력적인 젊은 남자였다. 친구의 인스타그램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녀와 아들의 데이트 사진들. 엄마와 아들은 압구정에서 둘이 브런치를 먹고 함께 등원하고, 또 둘이 저녁을 먹는다. 남편은 세상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삶을 살고 가끔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 남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본 이후로는 그녀가 올리는 사진들이 내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아들과 찍은 사진에 #나는너의운전기사 #우리둘 #언제나함께 따위의 해시태그가 붙은 걸 보는 것도 어쩐지 마음이 서늘하다. 그녀가 사는 집도 그녀가 쓰는 돈도 그녀가 긁는 카드도 전부 남편의 것이다. 스물다섯에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그녀가 정말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오직 아들뿐이다.
아들의 팬티를 다리는 아주머니도, 한 때는 콧대 높고 예쁜 아가씨였을 테다. 자기 팬티 스스로 빨겠다는 아들의 말에 울어 버리는, 아들의 여자친구를 두고 그년인지 나인지 선택하라고 말하는 괴물이 되어버릴 줄은 상상도 못 하였던 시절이 그녀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아주 조금씩 갉아먹는다. 내가 가장 끔찍하게 여기던 것이 되어버린 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만 시간을 갉아먹는다.
세 남자의 나이는 각각 서른넷, 열여덟, 그리고 네 살이다. 이들이 ‘엄마 아들’을 졸업하는 일은 꽤 요원해 보인다.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평생 누구에게도 진정으로 사랑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점이 많은 사람도 얼마든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어차피 단점 없는 사람이란 건 없기도 하고, 사랑은 그 단점마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신비로운 그 어떤 것이니까. 그러나 ‘엄마의 아들’은 아직 온전히 한 명의 인간도 남자도 되지 못한 존재이다. 그들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린다. 그들의 사랑은 엄마의 ‘승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시작된다. 엄마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삶을 삼십 년쯤 살다 보면, 엄마의 허락 없이는 모든 일이 불안해진다. 그런 남자에게 연민을 가질 여자는 있어도 진정으로 사랑을 느낄 여자는 없다.
인간이 자식을 낳는다는 건 핏덩어리를 한 명의 어른으로 키워내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도록 한다는 데에서 가치를 지닌다. 자식을 낳아 그저 ‘영원한 나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과연 그 모성도 숭고한 것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일까.
우연히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셋의 면면을 한 날에 마주하게 된 나는 저 '엄마의 아들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았다. 비슷한 여자들과 한 집에 사는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그러나 엄마 없이 홀로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상상으로도 영 그려지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