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걸 마케터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마케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섬세하고 민감하다. 그래야 트렌드의 흐름을 캐치할 수 있고 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브랜드의 특징과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작업을 위해 때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야 하고, 레퍼런스를 찾고 수많은 고민을 하며 창작을 한다. 정답이 없는 일에 머리를 싸매고 그나마 조금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애쓴다. 실제 그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이 매출로 이어지거나 브랜드의 생사를 결정하기도 하니 꽤나 무거운 일이기도 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작업한 창작물이 사회에 기록되고 피드백을 받는 일이니 상업 예술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도 어찌나 많이 써야 하는지. 기획안은 물론이거니와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메시지 같은 SNS 문안부터 시딩 가이드라인, 에디토리얼, 디스크립션, 문의나 클레임에 대한 답변 멘트, 그리고 넘쳐나는 이메일의 답장까지도. 이 모든 것이 글이니까, 어쩔 때는 작가로 전직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때론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글을 쓸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자동응답기처럼)
아무튼 - 이 직무로 밥을 먹고살려면 섬세한 성격이 유리하다. 모든 마케터가 그럴 필욘 없겠지만,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 반 바퀴는 앞에서 달리기를 뛰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섬세한 성격이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는데, 작은 것을 캐치해 낼 수 있는 성격은 티끌 같은 것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절망하게 만든다. 어쩌면 둔한 성격이었다면 다가왔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감당하며 산다는 게 여간 쉽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이 업을 하는 사람들의 턴오버가 빠른 것일 수도 있다. 아주 디테일한 작업을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섬세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빠듯한 기한에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되면 예민해지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버티면서) 조금의 굳은살이 생길 때도 있고,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하나씩 마련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다. 힘이 빠지거나 화가 나거나 지치는. 감당하기 쉽지않은 파도같은 마음이 멈춤이 없이 찾아 오겠지만, 그 주기가 조금은 길어져서 텀을 두고 천천히 찾아오기를 바랄뿐이다.
섬세함 덕분에 이 일을 하며 먹고사는데,
그래서 먹고살기 힘든 아이러니함.
그래도 계속 이 일을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