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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Nov 02. 2020

흑ㅠㅠ 추모 삼고빔?

가깝지는 않지만 낯익은 이의 떠남은 당황스럽다. 가까운 이도 아닌 나라는 사람도 당혹스러운데, 가까이 지내던 이들의 상심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바뀌어도 그런 마음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마음속까지 나타낼 수 없는 한계성에 괜한 허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허탈한 한계성을 보면 추모의 마음은 어떻게 계량되어야 하는지, 계량되어야 하는지 생각이 든다. 더욱이 추모의 마음은 나타낼 필요가 있는 것인지, 나타낼 필요까지는 없는 것인지도.


소식에 서둘러 귀가한다. 몸을 단정히 정비하고 검은 복장을 갖추어 장소로 향한다. 행사 비용에 보탬 혹은 떠나간 이 그리고 그의 친지들을 위해 현금을 준비한다. 추모의 자리에서 예를 갖춘다. 떠나간 이로 모인 이들과 고인을 함께 추억한다.


시간을 내어. 앱을 켜고. 글쓰기를 누르고. 알맞은 사진을 고르고. 소감을 쓴다. 직접적 추모를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이들은 추모글에 탑승해 응어리진 마음을 푼다.


둘의 행동에 있어서 어느 것이 고결하느냐 마느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추한 일이다. 각자의 행동 처음과 끝에 참된 마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마음이 있다면 추모는 충분하다만, 마음이 같아도 앱 추모와 방문 추모가 동격은 아니다만,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만, 위로가 되는 추모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타내 표현함이 아니라 행동하여 당사자에게 직접 전하는 것이다.


관계없는 제3자가 알림을 위해 쓰는 수행 도구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기도하는, 슬퍼하는 혹은 추모하는 사진을 추모 포스팅을 위해 소장하고 있을까. 이런 소시오패스가 떠났대도 그 추모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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