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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05. 2021

면접 보고 온 날에는 왜 이불킥을 할까?


면접이란 것은 살 떨리는 일이다. 그날 그 순간 내뱉은 나의 한 마디로 합격 불합격이, go stop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십몇 년 전 나의 첫 번째 면접. 3명의 중간 관리자를 작은 테이블 맞은편에 두고 잔뜩 긴장한 채 혼자 앉아 있었다. 당시 말로 이제 막 꾸려가는 ‘벤처’ 기업인 터라 공채의 개념도 아닌, 재즈/월드뮤직 장르의 좁은 파트 적임자를 구하는 경력스러운(?) 신입의 요상한 채용이었다. 재즈 월간지에 몇 년간 기자로 참여했던 것이 무기였으나, 면접을 망쳤다 생각했다. 축 늘어진 팔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근처 지하철 역 앞에서 한숨만 몰아쉬던 그날이 생각난다.

‘다시 여기에 올 일은 없겠구나. 이 활기찬 역 입구를 오르며 출근이란 걸 할 순 없겠구나...’

 

물론 나는 그 회사를 아주 오래 다녔고, 쓰디쓴 면접의 기억도 달달한 믹스 커피처럼 직장 생활에 녹아들어 갔다. 마침내 퇴사를 한 뒤에는 새로운 구직의 기회들을 붙잡았다. 코로나 시대의 면접은 또 완전 새로운 경험이다. 태어나 처음 집안 소파에 앉아 화상 면접을 보았다. 마스크를 껴고 면접장에 들어가는 게 이젠 약간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보여줄 수 있는 게 눈뿐이니 최대한 눈에 힘을 주거나 애써 눈웃음(?)을 띄운 적도 있다. 애석하게도 내 대답을 들은 면접 평가자의 표정 또한 마스크로 가려져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납작한 지원 서류에 아무리 좋은 단어를 다 갖다 붙여도, 현실이란 시공간에 마주 앉아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입체적인 과정이다. 공기의 흐름부터 달라진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눈빛, 목소리 톤이나 말의 속도, 몇 가지 제스처, 몸을 움직이거나 손을 쓰는 사소한 습관, 앉아있는 자세, 전체적인 체격이나 라인에서 풍기는 이미지, 떨고 있는 정도 등등 모든 게 신경 쓰인다.


회사 생활을  때 나도 공채 면접관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복잡한 채점표를 앞에 두고 한 명 한 명 집중해서 답을 듣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내가 평가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당당해 보이든 떨고 있든 나 또한 묘하게 긴장이 됐었다. 화려한 이력을 눈으로 읽어가며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왠지 그들 앞에 앉은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더랬다. 내가 뭐라고, 저들에게 점수를 준단 말인가.

 시절 내가 마주했던 청년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스산한 길을 돌아 나오며, 오늘의 면접도 망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보나 마나 이따 밤에 자다가 당근 이불킥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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