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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남았는데, 보드게임 정리 해도 되나요?

어른들이 잃어버린 질문 : 자주

by 박단단

어릴 적 나는 '몰라 병'이 있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주변 어른들이 무슨 질문을 하든 꼭 ‘몰라!’라고 대답했다.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내 의사를 확고하게 밝히는 일이 누군가에게 부담을 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몰라 병'이 등장하던 장면들이 군데군데 스쳐 지나간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시절,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고바지가 유행했을 때였다. 꼭 갖고 싶다고 졸랐던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아파트 시장의 옷 가게로 갔다.


“단단아, 바지 무슨 색 살래? 분홍색? 카키색?”


“응?...음...몰라”


“왜? 예쁜 거 골라봐”


“몰라.. 못 고르겠어. 엄마가 골라줘”


색 하나 고르는 일조차 어려워했다! 이건 단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옷뿐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 심지어 저녁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일에도 나는 '몰라'로 일관했다. 묻는 말에 백이면 백 ‘몰라’였다.


‘방과 후에 바이올린 할래, 피아노 할래?’ - ‘몰라’


‘저녁에 떡볶이 먹을래, 볶음밥 먹을래?’ - ‘몰라, 골라줘’


‘집에 들어갈 때, 마트 들릴까?’ - ‘몰라, 엄마 가고 싶으면 가자’


심지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의 순서조차 누군가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마치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처럼. 내 마음이 향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해 말로 꺼내는 일은 유난히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내게 펼쳐진 대부분의 일들은 누군가 만들어 준 일, 시키는 일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아이의 역할을 하며 자랐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격과 생각이 많은 성정이 맞물리며 커져간 ‘몰라 병’은,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내 일부가 되어 굳어졌다.


그 병은 성인이 되기 전까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주인공인 내 인생에서 늘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 속 썩이지 않고 공부만 잘하면 됐기에 굳이 인생의 단계마다 스스로 말을 세워놓지 않아도 괜찮았다. 스스로 할 일을 찾지 않아도, 주어진 선택지에 ‘몰라’라고 답해도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언제나 누군가 대신 결정해 줬으니까.


하지만 스무 살이 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 앞에 놓인 크고 작은 선택들을 이제는 내가 결정해야 했다. 앵무새처럼 ‘몰라’를 반복하기엔 세상은 너무 냉정했고, 공동체 속에서 관조자 행세를 하기엔 나의 우유부단함이 타인에게까지 짐이 되었다. 대형 쇼핑몰 한복판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막막했다.


지금도 스스로 생각하고 개척해 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요즘조금씩 느낀다. 누군가의 선택에 기대어 살면 편할지는 몰라도, 그 안에서는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음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정하는 방향키는 결국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잘하는 일인 줄만 알았던 내 어린 시절과는 달리, 요즘의 교실에선 꽤 적극적인 질문들이 오간다.


"선생님, 저 내일 스티커 가져와서 더 꾸며도 되나요?"


"선생님, 오늘 급식 반찬 개수가 많던데 제가 도와줘도 돼요?"


"선생님, 보드게임 순서 때문에 애들이 자꾸 싸우는데 학급회의 때 얘기해 봐도 될까요?"


질문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작은 머리에서 시작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다. 그중에서도 '자기 생각'이 오롯이 담긴 말은 특히 귀하게 들린다. 어쩌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익숙한 내 성격 탓에 이 말들이 더 특별하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곱절로 먹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에 여전히 자신감보다는 부담감이 앞선 내게 아이들의 자발적인 질문은 늘 생경할 따름이다. 여하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종이비행기처럼 날아와 꽂히는 말들 속에서 번뜩이는 열두 살 아이들의 자아는 정말이지 기특하고 경이롭다.


어느 해 방학식의 일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후텁지근한 여름, 1학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평소에는 당번을 정해 교실 청소를 하지만, 방학식 날에는 가능한 함께 대청소를 한다. 한 학기를 깔끔히 마무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대청소는 무엇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학 전야제이기 때문이다.


스물네 명의 아이들이 동고동락한 흔적이 남은 교실은 찬찬히 살펴보면 청소할 곳이 참 많다. 바닥 쓸기, 대걸레질, 칠판과 사물함 위 닦기, 분리수거, 신발장 정리까지. 모두에게 역할이 돌아가게끔 나누는 것은 내 몫이고, 가위바위보로 하고 싶은 역할을 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예상대로 가장 인기 있는 일은 교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분리수거였고, 가장 인기 없는 일은 바닥 쓸고 닦기였다. 겨우 한 시간 맡을 청소 구역을 정할 뿐인데, 아이들은 엄청난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가위바위보에 열을 올렸다. 긴 혈투 끝에 역할이 정해지고, 창문을 열고 책걸상을 복도로 옮기면서 대청소가 시작됐다.


유난히도 더운 날이었다. 교실과 복도 창문을 활짝 열자 뜨거움을 머금은 습한 바람이 잔뜩 들어왔다. 금세 불한증막처럼 달아오른 교실 속에서 아이들은 땀방울을 흘리며 각자의 일을 끝내기 위해 분주했다. 청소를 시작한 지 10분쯤 지났을 무렵, 교실 한 바퀴를 돌던 나는 뒤편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재훈이를 발견했다. 재훈이는 이리저리 흐트러진 보드게임 상자들을 다 꺼내서 바닥에 펼쳐 놓고 있었다. 카드를 가지런히 모으고, 굴러다니는 말을 제 자리를 찾아주고, 찢어진 보드판은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의문인 건, 대청소 역할표에는 '보드게임을 정리'가 따로 없었다. 재훈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재훈아, 너 뭐 해?"


"아 저 1분단 바닥 닦긴 데요, 아직 애들이 쓸고 있어서 이거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래? 네가 그냥 하는 거야?"


"아 네, 대청소할 때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지금 어차피 기다려야 하고요. 해도 되죠?"


나의 '그럼, 물론이지'라는 대답을 듣자 재훈이는 다시 무릎을 굽혀 보드게임을 정리했다. 관자놀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누가 시킨 일도, 본인이 맡은 역할도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한 것이다. 자신의 판단 아래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그것도 더없이 선한 마음으로.


시간이 흐르자 청소를 먼저 끝낸 아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그중 할 일을 일찌감치 마치고 구석에 서 있던 주한이가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양손에 물티슈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저, 선생님!"


"응?"


"저 사물함 위 다 닦았는데요. 아까 보니까 신발장이 먼지가 많더라고요. 혹시 저, 신발장 청소 도와줘도 돼요?"


"안 힘들어?"


"그냥 시간도 남고,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기특하면서도 얼떨떨한 질문이었다. 주한이의 모습이 우뚝 솟은 장대처럼 크게 보다. 재훈이도, 주한이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지도, 누가 지시하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주한이는 곧장 복도로 나가 신발장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몰라'를 자동응답처럼 내뱉던 내가 떠올랐다. 같은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는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또 누군가는 일이 주어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열두 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작은 교실에서도 그랬다. 어릴 적 나였다면, 아니 지금의 나였어도 재훈이처럼 묵묵히, 아니면 주한이처럼 선뜻 나서서 행동할 수 있었을까, 사뭇 부끄러워진다.


대청소는 한 시간을 꼬박 채워 끝났다. 청소를 마친 재훈이와 주한이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그새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교실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이 버겁다 보니 '몰라 병'은 성인인 나에게도 자주 찾아온다.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게 귀찮거나 번거로워서 그저 '몰라'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차단해 버릴 때가 있다. 특히 직장에서는 더 그렇다. 주어진 일을 다 했다는 이유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더 이상은 '모르겠다'며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때로는 '나는 모르는 일인데'라는 말을 방탄조끼처럼 두르고 그 뒤에 숨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몰라'가 차곡차곡 쌓여 목 끝까지 차오를 때면, 왠지 모르게 무기력한 날이면 문득 대청소날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스스로 생각해서 음 일을 결정했던 재훈이와 주한이.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숲에서 스스로 발자국을 찍어 길을 내듯이 아이들은 수많은 발자국을 스스로 찍으며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고 있었다.


"저 시간 남았는데, 드게임 정리 해도 돼요?"


짧은 질문 하나에 담긴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내 안의 '몰라 병'을 쿡쿡 찌른다. 설령 그 결정이 틀린 것일지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빛나는 일인지 아이들은 보여준다.


이제는 나도 '몰라'라는 말 대신, 한 걸음이라도 내 발로 내딛으려 한다. 누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내가 고른 길 위에서. 뒷걸음질 치지 않고 조금씩, 생의 주인공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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