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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Oct 13. 2021

들리는가? 며느리의 아우성이





시어머님 생신이라 시댁에 가려고 만들어 놓은 음식을 챙기고 있는데 큰아이가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데 왜 자기가 가야 하냐고 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아빠가 없는 거고 아빠가 없었다면 너희도 없는 거다.라는 의견을 설파했으나 아이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작은아이도 언니가 가지 않으면 자기도 가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그럼 집에 있으라고 했다.

남편은 포기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설득하려 하기도 약간의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큰아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시댁으로 가는 길에 남편과 계속 싸워야 했다.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자는 나의 의견과 무조건 아이들의 뜻을 받아주는 것만이 아이들을 위한 건 아니라는 남편의 의견이 부딪히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축하가 진정한 축하라는 나의 의견과 가족은 자꾸 만나야 정이 드는 것이라는 남편의 의견이 부딪혔다. 아이들이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부모님도 손주와 가깝게 지내고 싶으시다면 노력하셔야 하는 거라는 나의 의견과 모든 부모가 이상적일 수는 없는 거라는 남편의 의견이 충돌했다.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 역시 그랬다.

자명한 사실은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준비한 갈비찜과 황태를 넣어 끓인 미역국이 상에 올랐다. 구입한 광어회와 샐러드도 함께 곁들였다.

평소 좋아하시던 브랜드의 옷을 선물로 드렸다.

시부모님과 남편과 나는 조촐하게 점심을 먹고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보통 때라면 아이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겠지만 아이들이 없으니 세 사람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아버님과 남편은 립싱크를 하셨고 어색한 공기에 내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 질부야~ 어쩜 이리 이쁜 꽃을 보냈니?? 지금 질부가 보낸 생일 케이크에 초 꽂을라고 한다~ 보이니? 그니까 네가 노래를 불러라. "


시고모였다.

1년 전 시어머니 생신날 밤 9시, 걸려온 영상통화를 받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는 이미 늦어버렸고 전화기 밖으로 남편에게 눈치를 줬다. 눈치의 의미는 (나 어색하니까 네가 불러) 였는데, 남편은 죽은 척을 했다


" 네? 제가요? "

" 그래, 불러라."

" 지금요? (밤 9시이고 저는 잠옷을 입고 있는데요?) "

" 애들 잔다니까 너라도 불러라. "


반주도 없는 생신축하송을 어색스럽게 부르고 생신 축하드린다는 말로서 전화를 끊으며 현타가 왔다. 나는 내 엄마에게도 안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를, 그것도 밤 9시에, 아이들 깰까 봐 목소리를 죽여가며 불렀다.

죽은척하고 있는 남편을 정말 죽여버릴까 하는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잠을 청하던 그날이 올해의 시어머니 생신으로 또 반복되것 같았다.






효도는 셀프라는 말이 있다.

친정엄마 생신에 나는 남편에게 집에서 음식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친정엄마 생신에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서 남편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 않는다.

친정엄마 생신 때 드릴 선물을 남편에게 같이 고르러 가자고 하지 않는다. 친정 일을 도와주면 고마운 것이지만 돕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왜 나와는 정반대일까?

왜 그는 가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못마땅하고 앞으로 나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나의 말이 그토록 못마땅할까? 본인은 나와 같이 행동하지 않왜 내게 더 요구하는 것일까?

앞으로 나도 할 말은 하겠다.라는 이 말을 하는 나는 남편에게 이미 분란 조장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내가 아니기를 바란다. 아내이고 엄마이고 며느리이기를 바란다.

시키는 대로 묵묵히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두 사람이 기능을 잘하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여긴다. 서로 아껴주고 애정을 표현하는 부부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침묵한다. 관계에는 합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합리적이지 않은 감정에 치우친 의견은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작 본인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데에 그 함정이 있지만 스스로는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함정이다.

어머님 생신 때 갈비를 쟀다는 사실보다 정작 할 도리를 다 하고도 분란 조장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 더 당혹스웠다.






결혼 이후 시부모님 생신날 만나 식사를 하고 용돈을 드리거나 선물을 드리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다. 며느리니까 당연히 챙겨드려야 한다고 여겼다. 때로는 귀찮았다. 시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생신에 어버이날, 명절 두 번에 김장, 제사까지.. 각각은 일 년에 한 번이었지만 합치면 간단히 넘어가지 않는 행사가 일 년에 총 8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큰아이 말이 맞았다. 시부모님은 내 생일을 축하해주시지도 선물을 주시지도 않는데 왜 나는 장장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쭉 챙겨 왔을까. 그것은 정말, 당연한 일인 걸까? 그것은 진정한 축하였을까?

명절마다 큰 상에는 시부모님과 아주버님과 남편과   장손 조카가 앉고 나를 비롯한 여자들은 작은 상에 앉는다.

시댁에서 나는 존중받는 대상일까? 내가 그들을 존중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존중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대도, 나는 그들을 존중해야 하는 걸까?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며 존중을 요구하는 것은 착취다. 나는 존중받고 있는 걸까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남편에게 나는 존중받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 걸까?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에서 더 이상 애쓰지 않겠다.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

도리나 의무는 존중받는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참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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