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길이 없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길이 없다. 나침반이나 이정표도 없다. 그래서 길을 만들면서 나아간다. 도구가 없어 손으로 길을 만든다.

맨손으로 길을 만드니 손에서 피가 나고, 손톱이 빠지고 굳은살이 생긴다. 손이 너무 아파 주변의 나무와 돌을 주워와 곡괭이를 만든다. 길을 만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입에서 입김이 나오기 시작한다. 땅이 딱딱해지더니 얼어버린다. 곡괭이가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지붕 없는 길 위에서 덜덜 떨며 땅이 녹기를 기다린다.



햇살이 따뜻해지자 기쁜 마음에 곡괭이로 다시 길을 만든다. 한참을 만들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급해져 계속 곡괭이질을 한다. 비에 흠뻑 젖은 줄도 모르고 계속 길을 만든다. 비가 점점 더 많이 내린다. 멀리서 진흙이 쏟아져 내려와 내가 만들었던 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더 빨리 곡괭이질을 한다. 곡괭이가 부서져 버린다. 다급한 마음에 맨손으로 진흙을 퍼내지만 점점 더 많은 흙이 밀려 내려온다. 만들었던 길이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린다. 부러진 곡괭이를 들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흙투성이가 된 나는 하늘에 대고 악을 쓴다. 얼굴에 흐르는 것이 진흙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가 없다. 오랜 시간 비는 그치지 않고 밀려 내려오는 진흙은 멈추지 않는다.



한참이 지나자 비가 그치고 밀려 내려오던 진흙이 멈추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사라졌다. 폐허 위에서 문득 손을 본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던 시간 동안 피가 나던 손톱이 아물었다.

부러진 곡괭이를 주워 수리한다. 그리고 다시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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