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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May 22. 2022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도 되나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던,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부자가 되는 것이 미덕이 세상이다. 그런 사회에서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도 되나요?"란 질문은 순진무구하게 들린다. 조금이라도 사리에 밝다면,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결혼, 사랑은, 그 계산을 무력화 시키기 때문이겠지.


한켠으론, 이런 질문은 상대방 남자에게는 상처다. 해줄 것이 없다는 미안함으로 그런 의문은 당연하다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준다 해도, 사랑하는 여자가 여기저기 그런 조언을 구하고 다닌다는 걸 알면 마음은 아플 것이다. 마치, 가난한 여자친구를 둔 남자가 "가난한 여자와 결혼해도 되나요?"를 물어보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듯이 말이다.


나는, 자타공인 가난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12년째 살고 있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다.

행복하다는 그런 뻔한 형용사는 포함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주 행복하고 많이 웃는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도 행복할 수 있구나!' 이런 성급한 결론도 내고 싶지 않다. 이 안정기에 오기까지 우리는 사사건건 시시콜콜 싸웠고, 결혼 생활이 지옥이라고 각자 생각했던 적도 길었다.  


다만, 그 길을 가본 사람이니까. 내가 결혼할 땐,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누군가는 줄일 수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살다보면 돈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쓰고있을지도 모른다.




결혼한 바로 그 해, 남편은 신용부채가 6600만원 있었고, 자산은 거의 없었다. 시골에 평당 만원 하는 땅이 조금 있었는데, 그나마도 중간에 시댁 빚 갚느라 대부분 팔았으니 "거의 없다"고 해도 거리낄것이 없겠지? 그러다보니, 결혼할 때, 예단, 패물 이런 것은 실로 간소하게 주고 받았다.

그럼 글쓴이는 잘 살았을까, 못 살았을까.

친정 아버지는 증여세를 내지 않는 범위에서 지원을 해주셨고, 6년 간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모은 1억원, 그리고 내 이름으로 낸 대출 수 억 원으로 시작했다. 즉 빚더미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친정 아버지가 자수성가 법조인임을 감안하면 도움을 많이 받지 않았고, 회사 생활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 편이다. 부모님은 교육 외에는 지원을 해주면 자식이 망가진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계셨고, 스스로 이루지 않은 것은 금방 없어진다고 하셨으며, 이러한 언행을 몸소 실천하셨다. 그렇다면, 남편이 아내의 든든한 배경을 보고 결혼했을 거라고 비꼬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진 않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남편은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고, 돈을 어느 정도 모을 때까지 안 한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혼자 벌어서 어느 세월에 돈 모으냐고, 괜찮다고 하자고 하자고 졸라서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식해서 용감했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면 어떤 점이 힘드냐고 묻는다면,  


콩깍지가 벗겨지고 난 후, 일상을 사는 평범한 커플이 되었을 때부터 힘들다. 즉, 생각보다 금방이다.


아무도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돈이 부족하고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옭아맸다.
밥을 먹으러 가거나, 장을 보거나, 쇼핑을 갔을 때, 그 무엇보다 가격표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마트에 가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들을 테이프로 둘둘 묶어서 싸게 파는 매대가 있는데, 나는 거길 꼭 들렀었다. 사고나선 대부분 후회했다. 살 때는 곧 먹을 것 같은데, 사나흘이 지나면 싸게 산 것들은 안 사느니만 못하게 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 매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웃거리면서, 이번에는 잘 해서 먹겠지라는 헛된 계획을 갖는 내가 스스로 우스워진다. 늦은 밤 귀가를 할 때, 택시비가 아까워서 굳이 잘 오지도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피곤한 발걸음을 움직이는 것. 조금이라도 비싸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아는 맛이야' 하면서 참아야 했던 것. 다같이 더치페이를 해서 맛난 것 먹으러 갔을 때 비싼 것을 시키면 좌불안석이 되고 본전 생각에 억지로라도 먹었던 기억. 옷은 늘 세일하거나 매대에 누워있는 것을 골랐던 것. 경조사는 왜 이렇게 자주 돌아오는가 하면서 한숨을 푹 쉬던 기억.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저녁 먹고 들어가려고 굳이 일도 더 했던 기억 (당시에는 야근 수당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가상한 노력이 인정받는 것은 첫 1~2년 뿐이다.  

시댁에서 마땅히 해준 것도 없는데 아내/며느리의 노력하는 모습에 처음에는 남편과 시댁도 고마워 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현재 상황에 끊임없이 적응한다. 결혼 자금도 대부분 마련하고 맞벌이에 애까지 키우는데, 여자의 노력은 당연하게 치부된다. 혹은, 본인들의 현재 어려움에 가려서 여자의 노력은 그저 안간힘을 쓰는데 별 성과는 없는, 그런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는데, 여자의 가정을 향한 노력이 당연하게 여겨지면 그 다음엔 양쪽 모두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지고, 필연적 싸움이 시작된다.

그 노력과 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니, 아내/며느리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해준 것 없다고 전화 안 받아도 되냐, 시댁의 빚을 해결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거기에 왜 아무런 신경도 안 쓰냐, 왜 시댁에 연락도 자주 안하고 찾아오지도 않냐.

나는 나대로 우리 살기도 힘든데, 뭘 더 쥐어짜야 하는가.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도 잘 기르고 있는데, 그건 결혼의 충분 조건이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왜 남편이 결혼 전에 진 빚까지 떠안고 이렇게 고통 받으면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남편이 조금씩 미워지기 시작하고, 시댁 식구들에게도 내가 잘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둘씩 사라졌다. 왜 그들이 돈을 더 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또는 아껴쓰려고 하지 않았던 과거의 부채 때문에 현재의 내가 힘들어야 하는가. 그러다 보니, 웃음도 나오지 않고, 대화도 하기 싫어졌다.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이 다 세트로 온다. 장점만 골라서 받고 싶은데, 그런 결혼 생활은 없다.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같이 헤쳐나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그 상황, 그 사실은 작은 생활부터 큰 결정까지 대부분의 삶을 힘들게 했다. 돈 때문에 지치는 일이 많아질수록,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사랑하자는 그 맹세는 광속으로 소멸한다. 돈 없이 무슨 사랑이야.


심지어 남녀간 자본의 불균형은 관계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왠만한 잘못에도 남편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돈 때문에 훨씬 큰 고통을 줬는데, 내가 겨우 이 정도 잘못으로 당신에게 미안해 해야 하나? 라는 까칠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시댁에는 용돈을 드리고, 각종 공과금을 다 내드려야 했었다. 반면에, 친정으로는 안 드려도 되었고, 드릴 수 있는 돈도 없었다. 드리면 드리는 대로 안 드리면 안 드리는 대로 크고 작은 서운함이 계속 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2 이상 반복되니, 작은 일로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작은 일로 싸우고,  일로도 당연히 싸우고. 그러다 보니, 하루 걸러   싸우는 생활이 반복되었고 남편은 술을 마시면 주정을 부렸다. 주정도   부리기가 어렵지,  번째부터는 죄책감이    같았다. 빈도도 잦아지고, 증폭된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동반하는 예상가능한 문제들도 같이 불거졌다.




내 입장에서는 꽤 오랜 기간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남편 역시 그랬다고 한다.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한 것은 이미 예전에 온데간데 없고, 남편 본인도 지옥 같았다는 것이다.

그럼, 이 결혼, 이 관계는 옳았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우리가 어떻게 다시 좋아졌는지에 달려있는 것 같다.

현실주의자니까, 추상적인 이야기는 걷어내겠다.

가장 중요한 달라진 점 하나는, 지난 10년간 재테크에 힘을 쏟았고 빚을 다 갚고, 여유도 생겼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가난했다면, 이렇게 웃을 일이 있을까? 없다고 본다.


다만 이미 악화되고 서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단박에 좋아지나, 그건 또 아니다.

여유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났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를 포기하지 않은 건, 결혼할 때 내가 가졌던 기준 - 착한 남자. 나와 서로 존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 - 이라는 그 믿음과 기준은 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의 아홉은 싸움으로 끝나더라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자주 포기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큰 실수로 깊은 상처가 생긴 날들도 있었다. 비슷한 사유로 이혼한 친구도 있었으니 나의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목을 졸라버려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결국 용서하게 된 계기는, 남편이 그 착한 마음을 다시 꺼내고, 실수를 인정하고, 나의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 했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남편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저버린 나에게도 일말의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나는 너무너무 힘들다", "나는 받은 게 없으니, 잘해줄 것도 없다"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고 살았던 내 모습을 인지하게 되고, 이런 나의 마음 때문에 남편도 힘들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도 되나요?" 이란 질문은 질문부터 잘못 되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젊은 청년이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다. 그 부모가 설령 가난하다 해도, 그것 역시 죄가 아니다. 상황이나 운이 받쳐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 뿐이다.

순자산 백 억 이상의 부자 남자와 결혼한 친구들도 있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막대한 부가 아내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그랬다. 그러니, '부'가 선택의 기준이 되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더 깊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다만, 결혼을 앞둔 젊은 여자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을 내가 정말 온 몸으로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이 남자를 사랑하는가.
이 남자의 "어떤 면"을 나는 굳게 믿고 있고, 그게 정말 그 남자의 본질이 맞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 남자와 앞으로 같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나갈 자신이 있는가? 에 대한 생각과 마음의 정리가 먼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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