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플래닛 최혜지 대표

“무대가 없어서, 무대를 만들기로 했다”

by 대니얼 코치


아르플래닛 최혜지 대표,

“무대가 없어서, 무대를 만들기로 했다”



[대니얼 코치가 만난 사람들 7]
일을 수단이 아닌 ‘자기답게 살아가는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브랜드보다 먼저 사람을, 겉보다 먼저 철학을,
성과보다 먼저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무대는 재능 있는 사람이 오르는 자리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무대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 자리다. 광주에서 피아니스트이자 공연 기획자로 활동하는 최혜지 대표는 그 공백을 오래 불편해했다. 학교 안에서 연주할 기회는 있어도, 예술활동증명처럼 실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교외 무대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역에서 교외 무대는 많지 않았다.


광주·전남 기반 청년 예술 단체 아르플래닛(ARPLANET)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 대표는 공연을 만들고, 관객을 모으고, 무대 뒤에서 필요한 서류와 절차까지 함께 돕는 구조를 설계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며 지역에서 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존재감을 더 선명하게 증명했다.



KakaoTalk_20260202_110401494_01.jpg 아르플래닛 최혜지 대표. (사진제공=아르플래닛)



Q. 최근 인터뷰 기사에서 “서울이라면 이만큼 주목받았을까요”라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대표님께서 광주에서 직접 무대를 만들기로 한 선택은, 어떤 결핍이나 불편함에서 시작됐나요?

처음부터 무대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대학을 광주에서 다니다 보니 여기서 연주하고 싶은데 기회가 너무 없다고 느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교내 연주는 있지만, 예술활동증명을 발급받으려면 교외 활동만 인정되거든요. 학교 연주는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교외 활동을 해야 하는데 서울은 기회가 정말 많습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많고요. 그런데 광주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고, 저는 지역이 다소 폐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교수님들의 제자 발표회 같은 무대는 열리지만, 연고가 없거나 그 라인에 없는 예술인에게는 기회가 한정적이더라고요.


저도 결국 실적이 필요해 지인도 거의 없는 서울에서 15분 연주에 45만 원을 내고 무대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불편했습니다.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서 대학원 시험도 계속 봤는데 떨어졌고요.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광주에서 내가 개척하자’로 마음이 옮겨갔습니다.



Q. 피아노를 비교적 늦게 시작했고 입학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대표님께 남긴 건 결국 무엇이었나요? 요즘 대표님을 지탱하는 태도나 습관이 있다면요?

저는 또래들보다 늦게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쯤 시작했고, 중학교 때는 아예 안 쳤습니다. 고등학교 때 다시 시작했는데 늦게 입시를 시작하다 보니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시작할 때마다 제가 조금 뒤처진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습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3수할 때는 노력하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지금도 불안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단체를 하다 보면 유사한 단체도 생기고, 우리 차별점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때마다 제가 붙잡는 말이 있습니다. 입시 때 선생님이 정말 많이 해주신 말인데, ‘잘하는 사람이 남는 게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남는다’는 말입니다. 동기들을 봐도 결국 버티는 친구들만 음악을 하더라고요.



Q. 연주자에서 기획자로 넘어가던 시기를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은 대표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연주자에서 기획자로 넘어가던 시기가 2023년 프로젝트였습니다. ‘리멤버 아티스트’라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졸업 이후 경력이 단절된 분들이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그 공연을 광주 금호아트홀에서 했는데, 지원금 100만 원을 거의 대관비로 썼고 나머지는 포스터 제작 같은 것까지 거의 다 사비로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원래 무대 위에서 주목을 받던 사람이었으니까, 뒤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이 괜찮을까,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역할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보람이 훨씬 크더라고요. 적성이 이쪽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밖에 나왔을 때, 음악을 그만두고 제빵 일을 하시던 분이 정말 오랜만에 성악을 하신 거예요. 가족, 친구들이 와서 꽃도 주고 포옹도 하고요.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이분께 예술가였던 순간을 다시 선물해드렸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오래 남아 있습니다.



Q. ARPLANET이라는 이름에 “아름다운, Art, Artist, Planet”의 의미를 담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유난히 빛나는 단체는 어떤 모습에 가깝나요?

처음 아르플래닛을 만들었을 때는 지역에서 저 같은 청년 예술인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관객들도 굉장히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광주가 ‘예향의 도시’라고 하는데, 그 말이 그냥 슬로건이 아니라 관객 반응으로 확인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멤버들에게 “관객이 없는 무대는 무대가 아니다”라고 늘 말합니다. 그래서 공연할 때마다 기획도 중요하지만, 저는 홍보를 더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관객이 있어야 무대가 성립하니까요. 예술인도 시민도 함께 문화를 향유하는 구조, 그 상생을 만들어내는 단체가 빛나는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KakaoTalk_20260202_110401494_04.jpg 아르플래닛 공연. (사진제공=아르플래닛)



Q. 창단 이후 공연을 14회 만들고 전석 매진도 6회, 누적 관객도 2,300명 정도 모으셨습니다. 가장 벅찼던 순간 1가지와, 가장 짜릿했던 순간 1가지를 꼽는다면요?

가장 벅찼던 순간은 대학원에서 배정받아 가르침을 받았던 피아노 선생님의 독주회를 제가 직접 기획해 열었을 때입니다. 선생님은 광주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활동하시니까 광주에서는 전설 같은 분으로 남아 있거든요. 보고 싶으면 우리가 서울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제안을 드렸고, 결국 2024년 여름에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406석이 전석 매진됐고요. 대기실에서 “선생님, 매진이에요”라고 말씀드리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객석에서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이 무대를 만들었구나’라는 벅참이 있었습니다.


짜릿했던 순간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님과 대학원 연구 사업으로 융복합 실험 무대를 함께 했을 때입니다. 고등학교 때 수업에서 처음 알게 됐고 칠판에 사진이 붙어 있던 분이었는데, 제가 그분과 같이 공연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Q. 청년 예술인들이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청년 예술인을 지원하겠다는 프로그램은 많아졌는데, 지원 조건에 실적 몇 건 이상, 이 정도 규모 공연 경험 같은 게 들어가면 막 졸업한 친구들은 시작을 못 합니다.


또 음악학과, 특히 피아노 전공은 피아노만 집중해서 배우지 공연 기획서 쓰는 법이나 예산 짜는 법을 배우지 않거든요. 그래서 첫 번째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업계획서 쓰는 방법이나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배우는 교육이요.


두 번째는 작은 기회라도 졸업 직후에 바로 연결되는 지원입니다. 졸업하고 공백이 생기면 다시 피아노 치는 게 두려워지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이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아르플래닛은 무대만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술활동증명 같은 실적과 서류까지 함께 돕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고 느끼게 만든 개인 경험이 있었나요?

저도 실력이 엄청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해온 음악을 계속 무대에 올리면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게 환경 때문에 막힐 때 아쉬움이 정말 컸습니다. 나 같은 친구가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솔직히 왜 교수님들만 저런 무대에 올라가야 하지, 왜 어떤 사람들만 기회를 가져가지, 나도 똑같이 공부했는데 왜 못 올라가지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하반기 공연을 할 때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나 광주예술의전당처럼 규모 있는 공연장에서 하려고 합니다. 청년 예술인이지만 좋은 무대에 계속 올라야 기회가 생기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류작성은 멤버들이 정말 어려워합니다. 저는 먼저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경험자로서 돕고 있습니다. 1기 멤버들은 모두 예술활동증명을 받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멤버도 있습니다. 역량에 비해 주목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분이었는데, 공연마다 팬이 생길 정도로 반응이 컸습니다. 마지막에 “예술 피아니스트라는 걸 일깨워 준 무대였다”고 말씀하셨고, 결국 미국 유학을 가셨습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이건 진짜 필요하고, 공공에서 안 되면 민간에서라도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듭니다.



Q. 클래식은 어렵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아르클래식 콘텐츠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대표님께서 말하는 ‘클래식을 쉽게 만든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요?

처음에는 작곡가나 연주자 에피소드로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모차르트가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되니 이 방식은 어렵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클래식을 가르치기보다, 클래식 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어떤지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바꿨습니다. 지금은 예술인들의 이야기, 제 경험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듭니다. 연주자의 연애 이야기나 부모님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비전공자들이 예술 생태계가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로 궁금해하는 지점이 생깁니다.


공연 기획도 비슷합니다. 곡을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 접점을 만들려고 합니다. 듀오의 밤처럼 피아노 두 대를 올리는 공연을 ET 영화 포스터처럼 콘셉트를 잡아 궁금해서 보러 오게 만드는 식입니다.



Q. 전석 매진 같은 결과가 나오면 운이 좋았다고도 합니다. 대표님께서는 어떤 준비를 꾸준히 반복해 오셨나요?

운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홍보를 정말 많이 신경 씁니다. 예전에는 포스터를 붙이러 발로 뛰었는데, 지금은 SNS를 적극 활용합니다. 후킹 포인트를 계속 고민합니다. 기획을 너무 예술적으로만 풀면 어렵게 느끼시니, 일반 시민들도 와서 즐길 수 있게 초점을 둡니다. 그게 제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루틴은 공연장 스태프로 오래 근무한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공연 며칠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당일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몇 시간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프로세스가 머릿속에 루틴처럼 자리 잡아 있습니다.



Q. 지역에서 활동하며 보이지 않는 장벽도 있었지만, 반대로 지역이 주는 가장 큰 장점 1가지를 꼽는다면요?

지역이라서 주목을 받았던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은 예술인이 너무 많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광주는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실력이 있으면 더 주목해주시고 밀어주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청년 예술인을 위한 공연 기획 자체가 광주에서는 필요하다는 걸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십니다. 서울에서 했다면 이렇게까지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광주는 모두가 그 불편함을 겪고 있어서 공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1년은 공연 횟수보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처음 창단했을 때는 실적 압박이 컸습니다. 신생 단체니까 빨리 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죠. 지금은 연차 대비 공연을 많이 했다고 느껴서, 이제는 시도를 더 해보고 싶습니다. 독주, 앙상블, 협업도 좋지만 요즘은 융복합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디어아트도 했고, AI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시그니처 공연입니다. “이 기획자는 이걸로 유명하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트레이드마크를 만들고 싶습니다. 클래식의 고유한 가치는 두되 무엇을 접목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대표님께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일은 성취에 가깝습니다. 성취감이 없었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2024년은 정말 일만 했던 해였는데, 경력이 많지 않아 지원사업도 어렵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아 자부담으로 진행했습니다. 원래 유학 가려고 모아둔 자금을 공연에 거의 쏟았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냥 재미있어서 계속 했습니다. 공연 만드는 게 재밌고, 성과가 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제가 제일 기쁠 때는 지원서가 합격했을 때, 제가 만든 기획이 누군가에게 통했을 때, 전석 매진이 됐을 때입니다. 그런 순간을 보면 제가 이걸 진짜 재미있어서 하고 있구나라고 느낍니다.




- 김영민 커리어 전문기자, [대니얼 코치가 만난 사람들 7] 아르플래닛 최혜지 대표, “무대가 없어서, 무대를 만들기로 했다”,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6.02.11, https://www.justeconomix.com/ko-kr/articles/149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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