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세계만으로 우주를 상상할 수 있다. 우주의 깊이와 넓이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밖에 상상할 수 없다.
나를 오랫동안 사색하게 만든 말이다. 각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우주는 개인의 세계가 얼마나 넓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수록 ‘우주는 넓다’라는 말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우주의 무한함을 알면서도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무의식 중 감히 ‘무한’의 기준을 정한다. 아마 우리는 정작 그 무한이란 말이 기준이 없다는 것을 절대 알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우주는 본인의 지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을 넓힘으로써 그 ‘무한함’을 상상할 수 있는 기준이 더 넓어진다. 그러니 나의 우주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서만 한정된 유한한 우주라는 아이러니한 말이 된다.
내 우주는 작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다. 내 우주는 내 가족,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 세상이 굴러가는 각종 시사뉴스들, 내 직업과 그간 알게 된 다른 직업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의 종합체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쉬이 내 것이 되지 않았다. 내가 가꾼 나의 우주는 아직도 유한함과 비좁은 기준에 갇혀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사색하며 시간을 보내니 나에겐 어떤 결단과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나의 기준을 넓히는 것이 나의 우주를 넓히는 것이라는 너무 당연한 결과. 나의 세상을 넓혀준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일어나며 내가 만날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넓어질 나의 유한한 우주를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나의 넓어진 유한한 우주는 성인이 된 나에게도 무한에 대한 고마움과 무한의 기준에 대한 상상을 감히 허락해 주었다. 나는 현재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그 기초를 다지고 세상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것들을 소개해주며 그들의 우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현재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당신의 우주를 넓힐 기회를 잡으라며 먼저 손 내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내가 한정해 버린 나의 우주를 넓히고 싶은 걸 지도 모른다. 또 한 편으론 내 우주가 넓어질 때마다 나는 나에게서 가능성과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그래서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또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던 그 모든 시간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내 우주를 조금은 덜 유한하게 만들 그 시간과 공간을 향해 끊임없이 나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내 우주가 조금 덜 유한하게 되면 내 육체와 정신은 그 덜 유한한 우주에서 또 새롭게 태어나 무한한 우주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손에 쥐며 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겠지.
나의 우주가 넓어지는 것,
나의 세계가 조금 더 깊어지고 다양한 색채를 지니게 되는 것,
그리고 나의 인생이 더 자잘하고 빽빽한 가능성으로 채워지는 것.
그 모든 것을 감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