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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pr 24. 2016

근사한 고독

고독을 받아들이는 시간

책을 덮었다. 여운이 꼬리가 되어 달라 붙었다. 자락을 놓치기 싫어, 몸을 뒤집고 누웠다. 눈을 감고, 방금 전 마주한 문장을 마음으로 더듬거렸다. 


나는 캠프 사무소 앞 벤치에 누워서 밤새 그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곁엔가 이 우주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 순간 나는 고독을 경험했다.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가끔 낮잠을 자고 완전히 잠에서 깨기 전, 기분이 최악으로 치닫을 때가 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내가 하는 생각이라곤 '왜 살아야 하지' '시간이 무섭다' 뭐 이런 것들이다. 그 고독은 내가 정말이지 싫어하는 종류의 고독이다. 이 마음이 싫어 낮잠을 잘 이루지 못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고독에도 종류가 있다. 혼자 있는다고 해서 고독은 아니다. 고독은 여럿이 있을 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혼자이지 않음에도 느껴지는 고독, 그것 또한 슬픈 종류의 고독이다. 그렇다면 좋은 고독이란 게 따로 있나? 의문이 생긴다. 생각은 곧 행동이 된다.


감았던 눈을 뜬다. 천장으로 향했던 눈이 이내 방 전체를 천천히 훑어본다. 발을 천천히 바닥에 내딛고, 부엌으로 향한다. 어젠가 선물로 받아온 차를 우리는 보온병을 열어본다. 물을 끓이고 티를 튿어내 병에 넣는다. 다시 발걸음은 방으로 향한다. 책상 한 켠에 병을 놓아두곤 컴퓨터를 킨다. 양쪽 발을 의자 위에 올려두곤 그대로 끌어안는다. 손을 뻗는다. 키워드 위로 손가락이 유영한다. 홀짝-홀짝-마시는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나를 나로서 만드는 고독, 그 고독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하기도 하는 것. 고독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그 깨달음 속에서, 이것이야말로 근사한 고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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