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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pr 25. 2016

엄마는 통 먹질 못했다

엄마를 위한 기록 #2

아침으로 숙소에서 주는 한식을 듬뿍 담아 먹곤, 나와서 입에 대는 거라곤 늘 빵과 느끼한 소스로 범벅된 프랑스 요리가 전부였다.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익숙해진 나완 다르게 엄마는 누가 뭐래도 한국 음식만을 고집하는 인물이었다. 파리에 온 지 3일 째 되던 날 엄마는 한층 더 수척해졌고, 찡그려진 이마는 펴질 줄을 몰랐다. 


“엄마, 인상 좀 펴. 사람의 얼굴은 그간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어왔는지 흔적을 남기게 되는 법이야”


이렇게 까진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말했다. 


“엄마, 요새 늘 인상 찌푸리고 있는 거 알아? 인상 좀 펴봐” 

“내가 그랬어? 아니야 나 되게 좋은데” 


그건 진심이었다. 엄마는 새로이 접한 풍경에 들떠있었고, 언니와 나의 손을 양쪽 팔에 끼우고 파리 시내를 그야말로 활보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강한 사람이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 와서 늘 느끼는 거지만, 엄마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렇게 보였을 뿐. 엄마는 늘 말했다. 


“꿈에 어린 너가 나와 울곤 해. 그리고 엄마는 꿈에서도 그게 참 슬프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어린 날의 나를,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울상짓는 엄마를 상상하곤 울컥하고는 했다. 어린 날의 나를 안쓰러워 하는 건 비단 엄마 뿐만이 아니다. 젊은 날의 엄마를 안쓰러워 하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듯.


엄마는 나를, 언니를 키우느라 험한 것에는 익숙했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는데엔 미숙했다. 엄마와 수십번의 이사를 하면서 늘 내가 들은 말은 고작 이거였다. 


“이사 정리 끝날 동안 밖에서 놀다가와” 


그건 당연한 절차였다. 이사를 끝낸 집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나의 물건과 취향으로 이뤄진 방은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그것에 얼마만큼의 노력이 깃들여져 있는 지는 알려고 조차 하지 않고선.


여행 중 숙소를 옮겨다닐 때마다 짐을 푸는 건 엄마 몫이었다. 엄마가 잠시라도 닿지 않으면 나의 캐리어 내부는 늘 엉망진창이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떤 것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 지 나의 몫이었음에도 나는 늘 그걸 유예시켰다.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라 하면 조금 나은 변명이려나. 엄마는 수십번에 이사에 익숙해졌음에도 이곳에서는 낯선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엄마는 통 먹질 못했고, 그나마 나아졌을 땐 여행의 끝무렵이었다.


나까지 포함해 모두가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온 날. 오랜만에 엄마와 밥을 먹었다. 엄마는 프랑스 음식은 다시는 입에 대지 않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밥을 너무많이 먹어 탈이 났다고도 했다. 나는 그저 좋았다. 엄마와 마주앉아 있는 것도, 엄마의 머쓱한 웃음도, 5일 이상 해외여행은 못하겠다는 선언도. 그 모든 말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엄마와 내 주위를 둥실거렸다. 실감이 났다. 한국에 돌아왔음에. 동태찌개와 일산시장에서 갓사온 김을 밥에 말아 삼켰다. 오랜만에 먹는 그야말로, '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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