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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pr 26. 2016

따스하다의 정의

어떤 차가운 순간도 따스할 수 있음을 조금은 인정하게 되었다

한 겨울,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을 손에 한움큼 쥐었을 때, 

잠에서 깨 침대 한켠에 놓여있는 햇볕의 흔적을 손으로 더듬 거릴 때, 

고민에 버둥거리는 몸짓을 잡아내리곤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친구의 한 마디를 마주할 때. 

따스하다의 정의는, 예컨대 이런 것들일까.  


요즈음의 일상은 침대 한켠을 차지하고 누워 책을 읽다가 꾸벅 잠이들고 불현 듯 깨어 머리를 한번 툭 친 후 다시 글자를 읽어내리는, 뭐 그런 자기성찰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야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여차저차 그런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나의 평이다. 이제 막 김연수의<소설가의 일>의 마지막을 25페이지 남겨 두었을 때 친구 H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해에" 

답지않게 늘여진 문장에선 그간 나의 단톡방에서의 침묵에 대한 물음과 나의 고민을 기꺼이 나눠가지려는, 그런 선한 의도가 묻어있었다. 그러한 물음 앞에선 난 무장해제 된 채 마음에 꽁꽁 묶어두었던 고민들을 그야말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내 토로했던 건 그런 머니, 그런 파워, 즉 돈과 같은 이야기들과 고민에 관한 액션에의 실행여부가 되겠다. 마침 (해야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만약, 한다면 그 이전에 나로 돌아갈 수 없고, 그 시간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인데)와 같은 고민들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참이었다. 


김연수 작가가 책에서 이렇게 말했던가. 대충적으면 이렇다. "가만히 있으면 상처는 안 받겠죠. 그걸로 끝인 겁니다" (이렇게 극단적이진 않았다!-김연수 작가 덕후1의 절규) 그리곤 연이어 듣는 친구의 충고 "결국 얻은 게 아무 것도 없더라고 할지라도 분명 너의 안에 남은 것들이 있을 거야 나는 너가 무엇이든 하면 좋겠어" 김난도 선생의 비겁한 충고와 이런 종류의 말은 그 결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그건 나는 너가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해!가 아닌 그렇게 했으면 참 좋겠다아..! 이런 차이랄까.


김연수 작가는 이런 말도 했었다. '해야한다'는 하지 않았을 때의 어떤 불길한 징조를 내포하는 것이라고. 때문에 그러한 말의 전언은 뭐랄까..어찌보면 듣는이에 따라 협박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뭐 그런, 하여간 이상한 생각들만 잔뜩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란 정말이지...  


"꽃들이 피던날 난 지고 있었지만/꽃은 지고 사라져도 나는 아직 있어/손을 흔드는 내가 보이니/웃고 있는 내가 보이니/나는 영혼의 날개를 달고/노란 나비가 되었어/다시 봄이 오기전/약속 하나만 해주겠니/친구야 무너지지말고 살아내주렴" 


루시드폴은 7집의 타이틀 곡 '아직, 있다.'를 통해 이런 말들을 전했다. 지난 4월의 봄을 아직 붙들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곡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 것이다. 이토록 기꺼운 기록들엔 늘 속수무책이 되고야 만다. 결국 깨닫는건, 비겁하고 지리멸렬한 삶에도, 제 나름의 '따스하다'의 정의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따스하다의 정의란 이렇게도 말해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비겁할 지라도, 우리 견뎌내자. 살아내자"고 다독이는 것. 

그리곤 그에 관한 기록들을 기꺼이 내놓는 것. 


살짝 열어둔 창문 틈을 비집고 찬 공기가 방안 가득 들어찼다. 그 감각을 몸으로 느끼며, 어떤 차가운 순간도 따스할 수 있음을 조금은 인정하게 되었다. 


BGM)

루시드폴 - 아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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