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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pr 26. 2016

김광석, 영원의 증명

박제된 젊음 #1 김광석

김광석은 젊음 속에 사라지고, 영원 속에 존재한다. 60대 노인에게서, 때론 40대 중년에게서 듣는 그에 관한 회상 속 중얼거림은, 때론 어떤 종류의 말 못할 공허를 상기시켜 준다. 책 <청춘의문장들>에서 김연수는 김광석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5월의 푸른 밤이 교정 위로 드리워졌다. 도시의 붉은 불빛이 검게 기대 선 저녁 산 이마 위로 별빛이 반짝였다. 유리문을 열자마자, 유리문을 열고 조금 걸어 나오자마자, 참으로 푸른 밤이구나는 생각을 하자마자, 내 귓전으로 노랫소리 크게 울려 퍼졌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저도 모르게 나는 그 노래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노래는 계속됐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 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무슨 일인지 학교 가운데 있던 금잔디 광장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에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키가 작은 사내 하나가 통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며 서 있었다. 그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김광석이었다. 그날, 나는 김광석의 그 노래와 완벽하게 소통했다. 그 느낌은 죽어도 잊지 못할 느낌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날, 유리문을 열저마자, 유리문을 열고 조금 걸어나오자마자, 참으로 푸른 밤이구나는 생각을 하자마자 내 귓전으로 들려오던 노랫소리 귀에 들리는 듯하다.”


김광석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이는, 내가 들은 바 또 있다. 23살 무렵, 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 하기로 결정했다. 학위를 따기 위해선 해당 학과의 학점을 채워야 했다. 그때 전공 수업으로 선택한 것이 김창남 교수의 ‘대중음악의 이해’ 였다. 수업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국 대중 음악들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김광석에 관한 이야기는 예견된 것이었다. 김창남 교수는 김광석이 소속되어 노래를 불렀던 ‘노찾사’를 창시한 사람이기도 했다. 김창남 교수는 수업 중 김광석 이야기를 할 때마다 '광석이-광석이' 하고, 불렀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광석이를 오랜만에 본 날이 있었는데, 그때가 김광석이 죽기 한달 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차를 타고 스치듯 지나면서 반갑게 인사했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죠···"  


누군가의 마지막을 각자 다르게 기억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에게는 그의 마지막 기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전해들은 그의 자취들만이 알음알음 남아있을 뿐이다. 김광석에 관한 ‘전해진’ 기억은 하나 더 있다. 김광석이라는 가수에 대해 처음 인지하게 된 2008년 겨울, 고3의 끝 무렵이었다. 


예비 졸업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고3 담임 선생님들은 장기자랑 비스무리 한 것을 했다.  왁자지껄 한 분위기 사이로 당시 우리 반을 담당했던 담임선생님이 등장했다. 강당에는 한참 지난 멜로디의 포크음악이 나오던 참이었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그것은 말 그대로 김광석에 대한 누군가의 ‘추억’이 노래로서 전해진 경험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불렀던 게 '서른즈음에'였다. 그 노래가 김광석의 노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였다. 그때 그 노래가 이 노래였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은 그 음악이 나에게 꽤나 강렬하게 머물러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미친듯이 그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늦은 밤 목소리로도 채워지지 않는 날이면 그의 라이브영상을 찾아보고, 틀어놓고 잠들기도 했다. 


앞선 김연수의 회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예술이란 결국 마음이 통하는 게 아니라 몸이 통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던 그때의 일들이 어제인 듯 또렷하다. …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김광석은 젊어서 죽고 2003년을 기점으로 나는 김광석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게 됐다.”


기실, 내가 김광석에 관한 타인의 이야기에 집착하는 까닭은 나는 평생 그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어보지 못하겠구나 싶은 섬뜩한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의 음악을 내내 듣게 되는 건 복잡한 마음을 일게 한다. 그저, 슬픈 것이다. ‘아, 나는 평생 이 사람의 음악을 그저 전해들어야만 하는 것이구나.’ 라디오에서 마주치는, 영화 속 키워드가 되기도 하는 그의 노래는 영원 속에 존재하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우주에서도 오래토록 그럴 것이다. 



BGM) 

김광석 - 너무 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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