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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pr 30. 2016

바래진 티셔츠

넥 부분이 쭈글쭈글하고, 밑단은 이미 해진지 오래된, 그런 아주 오래된 티셔츠가 있다. 티셔츠 밑에는 이전 연인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티셔츠를 입을 때면 늘 자수로 새겨진 그 이니셜을 손으로 훑어내는 버릇이 나에겐 있었다. 만지작거릴 때마다 느껴지던 까끌까끌한 감촉은 그가 나른한 눈을 하고 쳐다볼 때 느껴지던 짜릿한 감각과 닮아있었다. 아마, 헤어지고 난 후에도 티셔츠를 버리지 못했던 건 그 이유였겠지.


이전 연인의 자취방은 학교와 10분 거리에 있었다. 학교와 그의 자취방을 드나들면서 늘 그의 티셔츠를 빌려 입곤 했다. 방에 놓여진 서랍 한 켠에는 그의 향기가 이제는 사라진, 회색빛이 돌던 색깔마저 옅어진 그 티셔츠가 놓여있다. 3년쯤 되었을까. 나는 그 셔츠를 곧잘 입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 옷을 입고 잠들 때도 있었다. 그리곤 늘, 옷을 꿰어 입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다. “아, 이거 버려야 하는데..” 그러면서 꿰어진 팔을 도로 내놓을 생각은 않는다. 그건 미련보다 더한 귀찮음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미련이 남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옷을 꿰어 입을 때마다 생각나는 그와의 지긋지긋한 마지막의 기억과 그걸 버리지 않는 스스로의 무딘 성정에 약간의 실망을 할 따름이다. 이 셔츠를 버려야만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길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런 기분은 비단 4년전 그와의 헤어짐 이후 어떤 연애도 하지 못한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저, 그런 것이다. 마음가짐의 문제. 나에게는 아마 그러한 구실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독이기 위한 아주 좋은 구실.


티셔츠를 들고 베란다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면의 감촉이 손 안에 한껏 닿아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멤돈다. 끝내 셔츠를 내려놓지 못한 손이 밑으로 떨구어진다. 방으로 가는 길을 되짚는다. 이것도 저장강박증의 한 부분일지. 이상하게 그렇다. 그와 얼만큼 함께했는지 어떤 일상을 공유했는지 가물가물한데 이미 나에게 와있는 이것에 대해선 놓지 못하겠는 것이다. 이것도 미련의 일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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