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송년회에 묻어가는 내 생일

by 단미

12월 30일은 내 생일이다. 바로 오늘.

생일이 하필이면 한 해 끄트머리인 까닭에 존재감이 거의 없다. 학교 다닐 때는 방학었고, 회사에 들어오니 송년회가 생일을 대신한다. 연말에 자체 디자인 어워즈를 하는 지금 회사에서도 매달 생일을 챙겨주는 다른 직원과 달리 내 생일은 디자인 어워즈 끝에 잠시 언급되는 정도였다.


언제부턴가 나도 내 생일을 그리 찾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생일이 연말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리는 무리도, 단짝이라고 부를 친구도 없었기에 가족을 제외하면 내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생일이 10월인 언니는 생일이면 언제나 선물을 한보따리 가득 안고 돌아왔다. 난 그런 언니가 부러웠고,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이 잠시나마 서글펐다. 지금도 매력있는 캐릭터인 언니는 학교 다닐 때도 인기가 좋았다. 아마도 언니 친구들은 언니가 생일을 홍보하지 않았어도 알음알음 기꺼운 마음으로 언니에게 선물을 주었을 것이다. 내가 부러운건 바로 그 점이었다. 기쁘게 선물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내게는 그런 친구들이 없었고, 그건 개인의 매력인 탓에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살아가는 내게는 축하해줄 사람이 없는 현실을 연말이라는 행사 뒤에 숨기기 딱 좋았다. 축하해줄 사람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된다고 체념과 인정을 섞은 채 살아온 지도 제법 되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올해 생일은 달랐다. 편두통이 시작되어 약을 먹고 누워있는 오전 내내 휴대폰이 자주 울려댔다. 잠결에 확인하니 여기저기서 보내온 축하 메시지와 선물 쿠폰들. 아니 이게 무슨 일일까. 내게도 선물 보따리가 날아오다니.


카카오톡 프로필에 생일을 비공개로 해두었음에도 어찌어찌 내 생일을 알고 기억해준 여럿이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왔다. 언젠가 살까 싶어 담아둔 위시리스트를 참고한 친구, 원하는 선물 링크 보내달라며 비싼 선물도 고를 수 있도록 꽤 큰 금액으로 상한선까지 정해준 친구, 같이 저녁 먹자며 시간 내달라는 친구, 멀티 비타민을 보내온 친구, 생일 케익 쿠폰을 보내온 동생 룸메이트...


언제나처럼 조용하게 지나갈 줄 알았던 내 생일이 처음으로 풍성해졌다. 이번 생일을 챙겨준 친구들 중 대부분은 온라인에서 시작된 인연이다. 결이 맞아 꾸준히 인연을 맺은 친구들인데 생일까지 챙겨주다니, 이제 드디어 내게도 마음을 얻은 친구들이 생겼다는 생각에 찡했다.


좋은 친구들이 머물러있을 만큼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거라 생각해본다. 생일까지 챙기지 않았어도 마음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일을 통해 확실히 알게된 셈이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음을.


매년 넘치는 선물 쿠폰을 나눠주는 언니에게 올해는 나도 자랑할 꺼리가 생겼다. 생일케익을 두 개나 더 먹게 되었다고. 얼른 와서 같이 먹자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