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역할

by 현우민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시스템 안전 엔지니어는 꼭 필요하지만, 같이 일하면 골치 아프다.”


프로젝트 엔지니어들은 늘 일정, 예산, 성능 달성에 쫓긴다. 이들은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지만, 시스템 안전 엔지니어가 문서와 분석 자료를 들고 나타나 “이건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증거가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프로젝트 속도는 급격히 느려진다. 팀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시스템 안전 엔지니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불편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안전은 단순히 ‘추가 옵션’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찾아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작은 결함이 거대한 사고로 번지는 건 순식간이다.


갈등의 본질은 단순하다.

프로젝트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일정·비용·기능 달성이 최우선이다. 변경이나 추가 시험, 설계 제약은 모두 부담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시스템 안전 엔지니어는 잠재적 사고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문서·분석·시험이라는 증거를 요구한다. 보수적인 판단, 즉 “안전망을 더 달자”라는 접근은 당연히 프로젝트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특히 후반부 설계 변경, 끝없는 문서화 요구, 리스크 허용 수준에 대한 견해 차이는 양측의 충돌을 더 크게 만든다.



그렇다면 답은 없을까?
있다.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해결의 핵심은 ‘안전을 초기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안전을 설계가 굳어버린 뒤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콘셉트 단계에서부터 안전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또한 안전을 ‘추가 비용’이 아니라 ‘투자’나 "미래 비용 절감'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트레이드오프와 비용-효과를 함께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는 MBSE(Model-Based Systems Engineering)를 통해 안전 분석과 설계를 투명하게 연결하거나, 팀 내 ‘Safety Champion’을 두어 소통을 매개체 역할을 하는 방식이 점차 자리 잡고 있다.


Note:


MBSE(Model-Based Systems Engineering)는 요즘 시스템 안전(System Safety), 복잡한 프로젝트 관리, 방위·항공·우주 분야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차세대 엔지니어링 접근법이다.


1. MBSE란 무엇인가?

MBSE는 말 그대로 “모델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이다. 전통적인 시스템 엔지니어링(SE: System Engineering)이 주로 문서 중심(보고서, 규격서, 도면)으로 시스템을 정의·관리했다면, MBSE는 디지털 모델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정의·분석·검증·의사결정하는 접근 방식이다.


즉, A4 문서 수천 장 대신, 디지털 환경에서 하나의 통합된 모델로 시스템을 관리한다.


2. 왜 필요한가?

현대 시스템(예: F-35 전투기, 우주선,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은 너무 복잡해졌다.

부품만 수백만 개

서로 다른 공학 분야(전기, 기계, 소프트웨어, 안전, 인간공학)가 얽힘

국제 인증·규제까지 동시에 충족해야 함


이걸 문서 기반으로 관리하면 불일치, 오류, 추적 불가 문제가 발생하니, MBSE는 이를 모델로 통합하여 정합성(consistency)과 추적성(traceability)을 확보한다.


3. MBSE의 특징

중앙 집중 모델: 하나의 모델이 ‘Single Source of Truth’(단일 진실의 원천) 역할을 함

시각화: 블록 다이어그램, 시뮬레이션, 디지털 트윈 등을 통해 이해하기 쉬움

자동화: 요구사항 ↔ 설계 ↔ 시험을 자동으로 연결·추적 가능

협업 강화: 기계, 전자, 소프트웨어, 안전 엔지니어가 같은 모델을 바라보며 협업

여기에는 Cameo Systems Modeler, IBM Rhapsody, Capella, PTC Integrity 등이 도구로 사용된다.


4. MBSE와 시스템 안전의 연결

시스템 안전 엔지니어가 늘 강조하는 것이 증거와 추적성이다.
MBSE를 활용하면,

“이 안전 요구사항이 어디에 반영되었는가?”

“이 리스크 저감 조치가 실제 설계에 어떻게 구현되었는가?”

“시험 결과는 설계 요구사항과 연결되는가?”


이 모든 걸 모델에서 추적 가능하게 만들며, 안전 분석(FHA, FMEA, FTA 등)을 모델에 연동하면 훨씬 투명하고 강력한 증거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예로,

문서 기반의 시스템 엔지니어링(SE)은 큰 건축 도면 여러 장을 사람이 맞춰보는 방식이라면, MBSE는 건물 전체를 3D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으로 올려놓고, 설계·안전·유지보수를 모두 연결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왜 정부는 시스템 안전을 요구할까?

외국에서 정부가 시스템 안전을 의무화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고의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 국가 자산, 기업의 평판, 법적 책임 어느 하나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단 한 번의 참사로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와 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정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방위 산업, 항공, 철도, 원자력 같은 분야에서는 시스템 안전 절차가 법적 요구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리스크를 줄이는 사회적 장치다. 그렇기에 항공·철도·원자력·방위 산업에서는 이미 국제 표준과 규제를 바탕으로 시스템 안전 절차가 요구되고 있다. 정부가 이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 시점에서는 시스템 안전(System Safety)이라는 단어는 아직 우리 일상에서 낯설다. 하지만 항공기, 자율주행차, 원자력, 방산 같은 분야에서는 이미 필수적인 개념이다. 하나의 작은 오류가 사람의 생명, 국가 자산, 기업의 신뢰까지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정부는 시스템 안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공개된 정책 및 법률 흐름 중 관련 있는 요소들

정책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스템 안전’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부가 내세운 공약이나 정책집에는 “안전한 학교”, “국민 안전 강화” 같은 표현이 많지만, 이는 사회 안전·생활 안전에 가까운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지점에서 시스템 안전을 읽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AI 기본법이다. 2025년 제정돼 2026년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인공지능의 윤리, 신뢰성, 안전성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이다. 즉, 기술 안전(safety), 특히 AI가 잘못 작동했을 때 생길 위험을 ‘사회적 리스크’로 보고 이를 제도권 안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는 곧 보이는 것 너머 따라서 시스템 안전의 일부 측면, 특히 AI/자동화 시스템에서의 안전성 확보가 정책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신호다.


아직 한국에서는 정부가 시스템 안전을 명확한 정책 분야로 규정한 것은 없다. 부족한 점들을 정리하자면,

엔지니어링 절차(분석·시험·인증)에 관한 체계적인 법·제도가 부족하다.

안전 전문가를 양성하거나 산업 전반에 확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AI 기본법을 시작으로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시티, 방위산업 같은 분야에서 “안전을 증명하라(Show Safety)”는 요구가 점점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의 미래 가치

한국은 이제 막 시스템 안전(System Safety)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체감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AI 시스템, 에너지 인프라, 그리고 K-방산 수출 확대 등은 모두 “안전”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래에는 시스템 안전이 단순히 항공·방위 산업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스마트시티, 우주 산업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이는 곧 시스템 안전 전문가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정부가 시스템 안전을 본격적으로 제도화하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전은 늘 늦게 주목받지만, 사고가 터지고 나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 안전 엔지니어는 불편한 존재다. 속도를 늦추고, 문서와 증거를 요구하며,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이다.


속도와 안전. 두 축은 늘 충돌하지만,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시스템 안전은 앞으로 더 중요한 자리,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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