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함”의 이면 — HHA분석

by 현우민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생활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아파트 중심의 밀폐된 주거 구조가 일반화되면서, 실내 공기질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건조한 겨울철이면 가습기는 필수 가전이 되었고, 이에 따라 가습기 내부의 세균 번식을 막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졌다. 1994년, 한국의 한 생활용품 기업은 이러한 흐름을 읽고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물탱크에 몇 방울만 떨어뜨리면 세균이 번식하지 않는다는 간단하고 매력적인 메시지는 순식간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아기의 폐까지 깨끗하게 지켜준다”는 광고 문구는 ‘청결’과 ‘안심’이라는 단어와 함께 가정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성공 이후, 경쟁사들도 이 시장에 빠르게 뛰어들었고 수많은 아류작과 할인점 PB제품들이 등장하면서, 가습기 살균제는 전국 가정과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 자리 잡았다. 제품에는 모두 ‘KC인증’ 마크가 부착되어 있었고, “인체에 무해하며,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문구가 당연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소비자들은 정부 인증을 받은 제품이니만큼 안전할 것이라 믿었으나, 제품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흡입 독성 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으로는 PHMG(Polyhexamethylene guanidine), PGH(Polyhexamethylene biguanide), 그리고 CMIT/MIT(Chloromethylisothiazolinone/Methylisothiazolinone) 등이 사용되었다. 이들은 본래 산업용 살균제나 세정제 성분으로 개발된 물질로, 인체가 흡입했을 때의 안전성 평가는 단 한 차례도 수행된 적이 없었고, 당시 한국에는 ‘흡입 독성 평가’에 대한 법적 요구사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업의 품질 검증은 피부 자극 시험 정도에 그쳤고, 정부의 사전 인증 제도 또한 화학물질의 사용 목적이나 노출 경로를 면밀히 따지지 않았다. 결국 이 제품들은 ‘생활용품’의 이름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제품이 시판된 이후,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들은 가습기를 통해 수증기 형태로 공기 중에 분사되었다. 미세한 입자는 사용자의 호흡기를 통해 그대로 폐 깊숙이 침투했으며, PHMG와 PGH는 모두 양전하를 띤 강염기성 물질로, 음전하를 띤 세포막과 결합해 세포막의 구조를 파괴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 물질이 세균의 세포막을 파괴하는 ‘살균 작용’의 원리였지만, 문제는 인간의 폐세포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후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 물질은 폐세포의 괴사를 일으키고 염증성 사이토카인(IL-1β, TNF-α)의 분비를 촉진해 폐 조직의 섬유화를 유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폐의 탄력성이 사라지고, 결국 비가역적인 폐섬유증과 폐 기능 상실로 이어졌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독성 기전이 제품이 판매된 지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야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질환으로 수많은 영유아와 성인이 사망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이후 2019년 국가독성과학연구소 연구팀은 PHMG-P가 세포막 파괴를 통해 독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규명했고, 2021년에는 PHMG-P 노출과 비전형적 천식의 인과관계가, 2022년에는 폐섬유증 발생의 분자적 기전이 밝혀졌다. 2025년에는 가습기 살균제를 30개월 이상 사용한 경우, 향후 폐암 발병률이 4.6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보고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제품 결함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의 공백이 만들어낸 사회적 참사였다. 기업은 시장의 속도에 집중했고, 정부는 화학물질 관리 체계의 미비 속에서 ‘인증’이라는 이름만 부여했다. 소비자는 믿었다. 그 믿음이 폐를 갉아먹는 독으로 돌아올 줄 아무도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 징후는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섬유화 환자들이 하나둘 보고되었으며, 특히 영유아, 임산부, 노약자에게서 심각한 호흡기 손상이 잇따랐지만, 의료계는 도무지 그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진단명은 “특발성(特發性) 폐질환” — 말 그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이었다.


그러던 2011년, 몇몇 병원에서 공통점이 포착되었던 부분이 환자 대부분의 “가습기 살균제를 장기간 사용”이었다. 질병관리본부(KCDC)는 즉시 역학조사에 착수했고, 같은 해 11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과 중증 폐질환의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평범한 가정의 거실, 아기방, 사무실에서 사용되던 ‘생활용품’이 사실상 ‘흡입 독극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이후 피해 접수를 통해 1,4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중증 폐질환을 앓았다고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신고된’ 피해자 수였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에서 약 800만 개 이상 판매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량의 화학물질을 들이마셨는지, 또 그중 얼마나 많은 피해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특정 화학물질의 독성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그 물질이 실제 환경에서 인간에게 어떻게 노출되는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즉, Health Hazard Analysis(HHA)가 부재했던 시스템적 실패였다.


제품의 설계와 인증은 있었지만, 사용자의 호흡이라는 현실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 안전 전문가의 말이 그 현실을 정확히 요약한다.

“우리는 제품의 효능만 검증했고, 인간의 호흡은 검증하지 않았다.”

이 한 문장은 그 시대의 안전 문화가 어디까지 도달해 있었는지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살인자’가 어떻게 일상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Health Hazard Analysis 분석으로 위험을 다시 보다

이제 가정하자. 이 제품이 출시되기 전, 올바른 HHA 절차가 수행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다음은 실제 HHA 표준 절차에 따른 가습기 살균제의 건강 위해 분석 시나리오이다.


Hazard Identification – 유해요소 식별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화학성분인 PHMG, PGH, CMIT/MIT는 모두 강력한 양이온성 살균제로, 세포막 파괴 및 단백질 변성 작용을 통해 항균 효과를 낸다. 문헌 검토 및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따르면,

피부 및 점막 자극성 있음

흡입 독성 데이터 부재

고농도 노출 시 폐 섬유화 유발 가능성 보고


즉, 인체 흡입 시 호흡기 손상 가능성이 높다는 잠재적 위해요소가 명확히 존재한다.

이 단계에서 HHA는 “흡입”이 예상 노출 경로인지, 그리고 어떤 인체 부위에 영향을 미칠지 식별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제품 개발팀은 이를 “가정용 제품이므로 흡입 노출량이 미미할 것”이라고 단정 지었고, 위험 식별 단계에서 이미 분석이 중단되었다.


Exposure Pathway Analysis – 노출 경로 분석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 물탱크에 첨가되어 초미세 입자로 공기 중에 분사된다. 이때 물방울의 크기는 평균 2~5 μm로, 인체 폐포까지 직접 도달할 수 있는 크기이다. 즉, 사용자는 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독성 입자를 흡입하게 된다. 노출 대상은 가정 내 전 연령층이지만, 특히 영유아, 임산부, 천식 환자가 주요 취약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 단계에서 HHA가 제대로 수행되었다면, 제품 사용 조건 자체가 인체 흡입 노출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했을 것이다. 이는 화학물질의 위험을 단순한 피부 접촉 수준이 아니라 공기 중 확산에 의한 장기 노출 위험으로 평가해야 함을 의미한다.


Risk Characterization – 위해도 평가

흡입 경로, 화학 독성, 사용 빈도, 취약 집단을 고려할 때, 중간~고 수준의 만성 건강 위해도가 예상된다. 모델링을 통해 계산할 경우, 일일 평균 노출 농도는 실험적 LD50(흡입독성치)의 일부 수준에 해당하지만, 지속적인 노출 누적 효과로 폐 섬유화, 면역 반응 이상, 호흡기 부전의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HHA 결과, 위험 수준은 다음과 같이 평가되었을 것이다.

위험 등급: High (치명적 손상 가능성)

노출빈도: Frequent (일상적 사용)

노출집단: Vulnerable (영유아, 임산부 중심)

따라서 이 단계에서 제품은 “추가 통제 조치 없이는 승인 불가”로 판단되어야 했다.


Risk Control and Mitigation – 통제 및 저감대책

HHA는 단순히 위험을 식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을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다음과 같은 제어 방안이 가능했다.

물질 대체(Substitution): 흡입 독성이 낮은 비휘발성 살균 성분으로 교체

공정 변경(Engineering Control): 살균제가 수증기 형태로 분사되지 않도록 물리적 격리 설계

경고 표시 및 사용자 지침(Administrative Control): “흡입 금지”, “환기 필요” 등의 명확한 경고 문구 삽입

흡입 노출 시험 수행(Verification Testing): 인체 및 동물 모델을 통한 독성 평가


이러한 조치 중 어느 하나라도 시행되었다면, 제품은 결코 동일한 형태로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Verification & Monitoring – 검증 및 후속 모니터링

HHA의 마지막 단계는 시제품 검증과 현장 사용 모니터링이다. 출시 후 일정 기간 동안 사용자 불만, 호흡기 이상 보고, 응급실 통계 등을 지속적으로 수집·분석했다면, 초기 피해 사례가 보고될 때 즉각적인 횟수와 경고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품이 10년 이상 유통되며, 정부와 기업 모두 시스템 차원의 건강 위해 피드백 루프를 갖추지 못했다. 결국 피해는 누적되었고, 위험은 늦게야 인식되었다.


종합 분석 — 시스템은 왜 실패했는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본질은 단일 제품의 독성 문제가 아니라, 위해 분석 체계의 부재가 초래한 구조적 실패였다. 기업은 ‘화학적 위험’을 검토했으나 ‘건강적 위험’을 검토하지 않았다. 정부의 인증 절차 역시 물질의 독성자료만 검토했을 뿐, 실제 사용 환경에서의 노출 가능성은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이 사건은 HHA가 결여된 사회 시스템의 전형적인 결과로 기록된다.


만약 설계 단계에서 단 한 번이라도 “이 물질이 사람의 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면, 1,400명의 생명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 — “보이지 않는 위해를 보이게 하는 기술”

Health Hazard Analysis(HHA)는 단순히 제품의 안전성을 문서로 입증하기 위한 형식이 아니다. 인간의 생리, 환경, 그리고 사용 맥락 속에서 제품이 초래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위해를 사전에 식별하고 통제하기 위한 사고의 틀이다. 즉, 기술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전제로 한 설계 철학이며,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안전의 언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절차가 존재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수행될 때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그 비극적인 실증이며, “깨끗한 공기”를 약속한 제품이 오히려 사람들의 폐를 파괴했다는 사실은, 위험이 언제나 존재하지만 ‘분석되지 않은 위험’이 결국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잔혹하게 일깨워준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HHA의 존재 이유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Health Hazard Analysis는 단순한 규제 준수나 기술 검토 절차가 아니라는 점과 보이지 않는 위해를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안전이란 절차가 아니라 사유(思惟)의 결과다. 우리가 HHA를 실천한다는 것은, 단지 제품을 검증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설계의 출발점에 두겠다는 사회적 알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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