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위험과의 대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후 아내옆에서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을 넘기고 있다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나왔다.
“길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길을 만들어야죠.”
“아니요. 그런 건 일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지요.”
“길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길을 찾지 마세요.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성공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길이라고 부르는 법이니까.”
드라마 대행사 속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오래 묵혀온 생각과 마주했다.
한국에서 시스템 안전 전문가가 과연 필요할까?
외국이 아닌 이 땅에서, 제도와 산업 구조 속에 나를 위한 길이 있을까?
시스템 안전(System Safety)은 복잡한 시스템이 운용되는 동안 사람, 장비, 환경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을 찾아내고, 분석하고, 줄이는 일이다. 단순히 ‘사고를 막는’ 차원을 넘어, 설계의 첫 선에서부터 위험을 예방하는 일. 위험 식별, 분석, 대책 설계, 규제 검토, 검증, 그리고 운용 중 모니터링까지—안전 엔지니어의 하루는 보이지 않는 위험과의 대화로 채워진다.
나는 이 직업을 ‘길’이라 믿고, 없으면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길에 집착하는 대신,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곧 길이 된다는 것을. 호주, 미국, 영국에서 익힌 규칙과 원칙들을 들고, 한국의 산업 현장에 서서 나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해 보일지도 모르는 이 영역에서, 언젠가 사람들이 내가 지나온 자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저기가 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