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경쟁의 기원과 역사적 흐름
인류 사회가 국가를 형성하면서 시작된 패권경쟁은 신권, 폭력, 무기, 전쟁, 무역, 경제, 화폐, 금융 등의 도구를 통해 전개되었다. 그러나 패권 역시 시대적 통치권의 영향을 받으며, 이에 따라 활용되는 도구도 변화해 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토템에서 샤먼, 절대왕권, 귀족, 엘리트로 이어지는 통치권의 변화에 따라 패권의 도구는 복합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각 시대의 지역 국가 간 힘의 균형과 통치 명분에 따라 패권 도구는 선택적으로 적용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이집트, 중국, 몽골,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패권국들은 지역 특성과 과학기술, 지도자의 통치 철학에 따라 다양한 패권 도구를 활용해 왔다.
패권경쟁의 두 가지 방식
패권경쟁의 방식은 역사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무기나 군사력, 강제무역, 관세, 억압 등 힘을 통한 직접적인 충돌이고, 다른 하나는 관용을 기반으로 동맹, 화폐, 금융 등 경제패권을 이용한 경쟁이다. 20세기 이후 패권경쟁은 경제패권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데 한계를 느끼면서, 국방력보다는 다른 패권 도구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후 미국은 자본주의 동맹을 중심으로 세계경찰 역할을 패권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
현대 패권 경쟁의 중심 요소
여전히 패권을 다투는 국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있지만, 20세기 이후 무역과 경제를 넘어 화폐와 금융, 디지털 기술이 패권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시진핑과 푸틴의 장기집권 하에 패권경쟁에 임하고 있다. 다만 두 나라가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 비해 화폐와 금융,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어 무력에 무게 중심을 보다 두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미국을 포함한 서방 패권국들은 경제패권의 세분화된 요소인 화폐와 금융, 디지털 기술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려 한다.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는 강력한 응징을 받는다. 이란과 북한, 이라크처럼 핵무기 등 무력을 통한 패권 도전에 나선 경우 패권국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제재가 가해졌으며, 경제패권에 도전했던 일본은 미국의 우방임에도 불구하고 플라자 합의 이후 내부경제문제와 엉키면서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게 되었다.
새로운 패권 도구의 등장
현재 AI와 새로운 통화의 도입은 새로운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으며, 금융은 무력과 통화가 야기하는 패권 질서의 혼란 속에서 발화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를 경험한 한국은 금융과 환율을 통한 패권 제재의 위험성을 이미 체감한 바 있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채권과 달러발행의 남발로 곳간이 비기 시작한 미국도 전쟁이나 무력을 통한 패권 유지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은 '세계경찰'로서의 역할과 국제기구를 통한 환경 및 공정무역을 패권 도구를 활용하는 패권전략은 포기하는 듯하다. 이로 인해 세계 질서는 다시 무질서한 엔트로피 상태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 틈을 타 각국은 공정무역, 지구환경이라는 인류사회의 합의된 가치를 뒤로한 채 자국우선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21세기 패권경쟁의 신호탄
사실 1950년 이후 세계는 독보적 패권국으로 등극한 미국에 의해 힘의 균형, 즉 안정적인 엔트로피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미국의 패권요소인 '달러'를 인정하는 대신 캐나다, 유럽, 한국, 일본마저도 미국의 방위 우산 아래 국방비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그간 금융, 통화, 국방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미국이, 경제가치관이 다른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21세기 들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정보 대칭사회, 메타유니버스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의 패권 역학이 흔들리게 되면서 틈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곳간이 비면서 패권에 틈새를 보이는 상황을 간파한 트럼프는 'America First'를 화두로 던지며 새로운 패권경쟁의 신호탄을 올리는 듯하다. 불법이주자, 관세, 자원 분야에 있어서 우방을 포함해 세계의 왕에서 마치 신(神)처럼 굴림하려는 미국의 이러한 고압적 태도는 사실 '자신들도 위험하고, 배고프다'는 미국의 처절한 신음소리로 들린다.
이러한 변화는 2차 대전 이후 안정된 엔트로피 상태였던 인류사회에 세계적 무질서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또 다른 패권경쟁이 불가피할 것임을 의미한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이 이러한 패권 변화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패권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는 이미 서로 연결되어 있다. K-드라마나 K-팝 등 민족주의적 한계를 갖는 도구로는 패권경쟁에서 생존과 승리가 불가능하다. 더불어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의 재래식 무기 생산력도 한계가 있다. 비록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미국이나 유럽 심지어 러시아의 재래식 무기 생산력에 문제가 있음이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들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전쟁이 없던 시기 재래식 무기의 생산력을 유지할 필요성이 없었을 뿐, 마음먹고 GDP의 2~3%만 국방비에 사용해도 머지않아 국방력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들이다. 따라서 여기에 방심할 수도 없다.
미래 패권을 위한 패권도구
이제 21세기형 패권국가 모델을 예측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독창적인 패권도구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다. 패권경쟁에서 일방적으로 공격당하지 않도록 힘의 균형, 협상력을 위해서 필요하다. 물론 아직도 한국은 마음만 먹으로 패스트팔로워전략으로 급한 비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고학력과 노령화사회로 이어질 노동력 상실은 제3의 국가의 노동력 또는 이민이나 난민수용, 노동비용이 적은 북한과의 경제분야 협력 등으로 해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문제는 진정한 패권도구는 only one인 '퍼스트펭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없을 정도로 우리의 기초과학은 취약하고, 산업화 사회의 잔재인 주입식 교육으로 지적재산권이나 창의성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으로 많은 박사학위를 배출하고 있지만 노벨상급의 박사논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박사논문은 운전을 잘하는 의미가 아닌 운전면허 즉, 운전할 자격을 득하는 수준일 뿐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박사학위가 대학의 졸업장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진 이유다.
이러한 교육방식과 사회분위기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창의적 패권도구를 창조해 낼 수 없다는 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패권경쟁에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우리만의 패권도구를 창조하고, 설계하고, 확보하지 않으면 평생 수비만 해야 한다. 강대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드려 맞아야 한다.
패권 갈등에서는 서로 갖지 못한 '패권도구'를 갖고 있어야 정권에 상관없이 협상이 된다. 줄게 있어야 받을 게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이 결합된 새로운 철학을 기반으로 학문 간 통합교육, 독서, 논리교육에 힘써야 한다. 사이버대학을 포함해 400여 대학 중 1학년부터 융합학부로 운영하는 대학은 카이스트를 비롯해 몇 개 되지 않는다. 반도체 투자와 같은 현실 경제에 집중함과 동시에 탈반도체 대안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 양자통신, 양자컴퓨터를 비롯해 반도체를 대체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창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는 미래 충분한 패권도구가 될 수 있다. AI의 편리성에 중독된 국가의 국민들에게 AI는 충분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GPT 탄생 2년 만에 이미 관리, 기획, 홍보, 마케팅, 설계, 디자인, 분석 분야에서 인력을 대체할 정도로 AI는 중독성이 강하다. 중국은 자체 AI인 Deep Seek를 개발해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저비용 AI인 Deep Seek의 탄생으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저비용으로도 이제라도 AI 주권(sovereign)을 찾을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자체 위성이나 GPS, 통신망을 갖추지 못하면 재래식 전쟁에서 승리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은 패권경쟁에 돌입한 세계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직격타를 맞고 있다. 정치위기는 스스로 극복했던 대중의 힘으로 인해 이런 위기는 금세 평온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패권경쟁은 외부의 힘이기에 피할 수도 없다. 세계적으로 엔트로피가 무질서 상태로 도래하면서 21세기형 패권경쟁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패권경쟁 대비전략
이제 대한민국은 21세기형 패권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기존 패권 도구를 분석하고 이에 철저히 대비하는 전략뿐만 아니라, AI나 로봇 등 새로이 탄생하는 패권 도구를 연구하고, 더불어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는 패권도구를 창조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 패권갈등 예방위원회라도 조직해 기존 패권도구를 분석하고 예비하면서, 우리만의 패권도구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필요한 시기다. 다시 돌아보면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무기를 빠르게 복제하는 기존 패권도구를 따라가는 패스트팔로워 전략과 병행해 젊은 이들을 미국과 유럽에 보냄으로써 새로운 패권도구를 창조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 메이지유신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 이후 나라를 빼앗겨 본 역사가 채 200년도 안 되어 또 같은 망국의 쇄국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국가가 패권경쟁에 뛰어든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는 것도 21세기형 쇄국이다. 노동력과 자원이 풍부한 같은 민족끼리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 또한 미래 후손들이 쇄국으로 평가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자세는 과거 일본의 패권 도구였던 메이지유신을 통해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미래 후손들에게 무책임한 배임행위나 다름없음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 부회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