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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플라자 합의를 대비하자

by 박항준 Danniel Park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 회담은 세계 경제 질서에 하나의 거대한 전환점을 남겼다.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쇠퇴를 막기 위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하는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일본과 독일은 수출 경쟁력을 잃는 대신 미국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희생을 치렀다. 바로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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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제2의 플라자 합의’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준비되고 있는 징후들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겉으로는 관세 전쟁, 안으로는 통화 구조조정이다. 스티브 미란의 보고서에서 제시된 파격적인 아이디어―외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무이자 100년 채권이나 영구채로 전환하자는 제안―는 실현 가능성보다는 협상 테이블 위에서의 지렛대 역할에 가깝다. 그것은 곧 "무역 압력 + 금융 압박 + 안보 위협"이 결합된 복합적 레버리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다자간 협의와 외환시장 개입이라는 비교적 협력적 방식이었다면, 제2의 합의는 미국과의 1대1 양자 협상과 관세, 안보, 금융자산을 연계한 강압적 거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등장 가능성, 고평가된 달러의 지속, 그리고 세계 경제의 블록화 흐름은 이러한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 재편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외환보유의 질적 구성 전환이 시급하다. 미국 국채 의존도를 줄이고, 보유 자산의 전략적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기준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량 관리 같은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금(gold)과 같은 안전자산은 물론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통화) 등을 활용한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을 준비해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화폐, 국내용 화폐, USDT와 유사한 스테이블 코인 기반의 무역 결제 시스템 등 새로운 금융 인프라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할 정부 조직의 개편도 요구된다.


둘째, 관세 전쟁에 대비한 산업별 시나리오 구축이 절실하다. 미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핵심 산업은 물론, 문화콘텐츠를 넘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 기반 융복합 산업의 발굴과 투자가 필요하다. 반도체 기술을 보유하고도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선도하지 못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고의 도자기 기술을 갖고도 상업화에 실패해 일본에 시장을 빼앗기고, 결국 나라까지 잃었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적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환율 및 금리 정책의 외교적 연계 강화가 필요하다. 통화정책은 더 이상 중앙은행의 독립 영역에만 머물 수 없다. 외교적 협상력과 통화가치의 조정은 직결될 것이며, 이를 위해 종신영사 제도 도입 등 지역전문가 양성과 외교역량 제고가 필수적이다. 무역불균형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며, 그 원인과 입장을 상호 교환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동맹 안보와 경제적 양보의 연계에 대한 감시와 균형이 중요하다. 동맹은 신뢰 기반이지만, '우리가 지켜주니 경제적 양보하라'는 식의 일방적 압박은 양국 모두에게 피로감과 반감을 남긴다. 명확한 기준과 원칙 없이 맞이하는 양보는 결국 사중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방위비 분담, 안보협력, 통상정책은 더 이상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지금 미국은 다시 한번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거칠고,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플라자 호텔의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가 아닌, 거친 무역 전쟁터 위의 협상 테이블에서 제2의 플라자 합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진지하게 꺼내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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