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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Sep 15. 2023

하필 소아과 의사가 되었다

프롤로그

 메스와 나이프 소리만 들리던 수술방안.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흰 머리카락에 선한 눈의 마취과 선생님이 전화를 받더니 수술 어시스트하던 나를 불렀다. 산부인과 1년 차 선생에게 리트랙터(retractor 장기나 조직을 당겨서 유지시켜주는 의료기기)를 넘기고 전화를 받았다. 장모님이었다. 돌도 안 된 첫딸이 기어가다 1m 남짓 되는 부엌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내 얼굴은 눈물범벅에 하얗게 질려있었다. 울고 있는 딸을 안았다. X선 사진을 본 후 진찰을 마친 소아과 교수님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괜찮다고 하셨다. 그 한마디에 근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에 짧은 숨이 돌았다. 나 역시 아픈 사람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의사였지만, 아픈 딸아이의 아빠이기도 했다. 딸아이를 보호해 준 수많은 손길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인턴 과정을 마치고 망설임 없이 소아과 의사가 되기로 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손 내밀고 싶었다. 하지만 소아과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 1년 차 과정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삼십 년 전 대학병원 소아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애달픈 부모 마음이 먼저 달려오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연약한 생명 지키는 얼기설기 무수한 줄 사이로 어린 아들 손 꼭 잡은 부모의 떨림을 보았다. 먼저 떠나버린 아이를 위해 울음 삼키며 기도하던 흐느낌을 들었다. 아이를 살리려고 밤새 애쓰다 고개 떨군 숱한 하얀 가운을 보았다. 그리고 부엌 턱에서 떨어져 사색이 된 딸아이 소식에 눈물 닦으며 달려가던 나도 있었다.      

 소아과도 신경, 호흡기, 내분비, 혈액 종양, 소화기, 심장 등으로 세분되어 있었고 분야별로 2개월 이상 순환 근무했다. 지금이라면 도무지 해낼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입원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한 후 저녁 여섯 시부터 밤새 응급실이나 병동 당직 근무를 했다. 한숨도 못 자고 일하다 다음 날 저녁 여섯 시가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205번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기억이 셀 수도 없다.

 병원에 온 아이들 대부분은 잘 치료받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이를 먼 곳으로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자식 잃은 부모의 발걸음은 아직도 가끔 귓전에 울린다. 그렇게 아이를 잃고 나면 다음번 아이는 살리기 위해 콘퍼런스를 하면서 지식과 경험의 칼날을 벼렸다. 서슬 퍼런 삶과 죽음의 여명에서 매일 뜬눈으로 지새웠다. 

 소아과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소 짓는 아이를 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환자 가족, 씩씩하게 걸으며 퇴원하는 환아의 모습, 누군가의 마음에 편히 내쉴 수 있는 숨을 내어드렸다는 기쁨에 나는 이십 년 넘게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지금은 섬마을 소아과 의사로 살고 있다. 내가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고 한반도와 연결되는 큰 다리가 두 개나 있으니 어찌 보면 섬마을이라 하기엔 어색하다. 하지만 바닷가에 서서 찰랑거리는 푸른 파도를 볼 때면 바다 너머 육지를 그리워하는 영락없는 섬사람이 된다. 
 

 밤 열시, 조용한 진료실을 둘러보다 책장에 꽂혀있는 오래된 잡지 한 권을 꺼냈다.

 “저는 아기를 보면 사족을 못 씁니다. 전공 선택할 때 많이 고민했죠. 아기를 좋아하니까 아기가 아픈 것은 안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아기를 위해 의술을 펼친다면 평생 보람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소아과를 선택했고, 이 결정에 후회는 없습니다.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나가 의료봉사 활동하는 게 제 꿈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곳은 국내보다는 오지이거든요.”

 한 잡지 인터뷰에서 지금보다 이십몇 년은 젊은 내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소아과 의사가 사라지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 외국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다. 

 사명감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낸 소아과 의사들은 이제 ‘하필 소아과 의사가 되었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리는 정말 하필 소아과 의사가 되었을까. 필히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던 과거의 나는 그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나도 하필 소아과 의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손 내미는 의사이고 싶다. 

 하필(何必). ‘되어 가는 일이나 결정된 일이 못마땅하여 돌이켜 물을 때’에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나는 다른 뜻으로 읽고 싶다. 하필(下筆). ‘붓을 대어 쓴다는 뜻으로, 시나 글을 짓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이십 년 넘게 소아과 의사로 살아왔고 또 그만큼 더 소아과 의사로 남을 것이다. 

 눈앞에서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된 아이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이제 나는 하필(下筆) 소아과 의사로 남고 싶다. 그래서 나의 작은 기록이 아이 하나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이에게, 또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힘 하나 보태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하필, 소아과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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