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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 Sep 25. 2020

"나는 한국에 삽니다" - '어서와'의 이시국 대처법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특별판 리뷰

어느 날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덮쳐온 바이러스는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 시국의 예능 생태계에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프로그램은 국내외를 오가며 촬영이 진행되었던 여행 예능들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어느덧 MBC every1의 간판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 처음 와본 외국인 친구들의 리얼한 '한국 여행기'를 통해 '여행' 그대로의 보는 즐거움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재미까지 동시에 선사하는 '신개념 국내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의 프로그램 소개글이다.


한국에 오는 것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과 같은 시대에 '한국에 처음 와본 외국인 친구들'을 어디서 찾아 어떻게 데려온단 말인가. 촬영이 중단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몇 주 뒤, TV 채널을 돌리는데 우연히 <어서와> 타이틀 아래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외국인 출연자가 자신의 자취방을 청소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 시국에 어떻게 방송을 하는 거야?"


리모컨을 들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 채널을 고정했다. 그때 아주 약간 달라진 프로그램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와~'한국살이'는 처음이지?>



특별판 편성은 현명한 대처였다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의 주인공이 소위 '한·알·못' 여행자들이었다면, 그 특별판 <어서와~한국살이는 처음이지?>에서는 한국에 O년 이상 거주 중인 유학생 내지 직장인들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프로그램 본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야를 넓혀 '이시국' 방송 환경에 맞는 활로를 잘 찾은 듯하다. '한국에 대해 아는 바 없는 외국인 친구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라는 기존의 포맷이 슬슬 지루해지던 차에, 떠나는 시청자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는 현명한 대처였다. '한국이 처음'이어야 한다는 기존 포맷의 한계를 버리니, 한층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던 덕분이다.



친구들의 한국살이는 현재진행중 


<어서와~ 한국살이는 처음이지?>가 담아내는 것은 이미 흘러간 추억이 아닌 오늘의 일상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마주칠 일이 없을 외국인 여행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나의 이웃을 만나는 셈이다. 친구들의 '한국살이'는 앞으로도 화면 밖에서 계속될 여정이기에, 더더욱 그들의 내일을 응원하고 기대하게 된다.


충남아산FC 출신 필립과 무야키치의 에피소드가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두 선수 모두 할 줄 아는 한국말은 몇 마디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배달 주문 전화에서부터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까지 일상 속 모든 것을 교재 삼아 한국어 공부에 최선을 다한다, 한국 보양식 대표 메뉴 삼계탕도 식당에서 한 번 맛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 몫까지 직접 끓여 함께 나눠 먹는다. 그들의 한국살이 적응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때문에 굳이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한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두 선수의 모습에서 그 노력의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로 필립과 무야키치의 에피소드는 그 진솔한 매력으로 시청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뉴페이스 멤버 브루노와 두 선배 '아산러'의 여행기를 담은 후속 에피소드가 방영되기도 했다.


출처: MBC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한다, 그래서  끌린다


비빔밥을 섞지 않고 먹든, 밑반찬까지 모두 넣어 비비든, 숟가락을 쓰든, 젓가락을 쓰든, 각자의 취향과 판단과 따라 매번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하지만 비빔밥을 먹는 방식에 있어 유일한 정답은 없지 않은가. ‘한국살이’도 마찬가지다. 가지각색의 한국 전통 문양으로 치장된 집에서 사는 화려한 1인 가구의 삶부터, 손주와 할머니가 함께 살아가는 정겨운 대가족의 삶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다양해서 더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어서와~한국살이는 처음이지?>는 '한국살이'를 자기 입맛대로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패널들도 출연자의 행동을 지적하거나 훈수를 두기보다는 외국인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어서와’는 그래서 자연스럽고 다채롭다.


다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화려한 스펙보다는 소소한 케미를 찾기를 


명문대 학위, 대기업 직장이나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재미나게 살아가는 외국인 이웃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런데 최근의 ‘어서와’는 특출한 재능이나 사회적으로 선호하는 ‘스펙’을 가진 친구를 찾는 데에 유난히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례로 최근 회차에서는 미국 국적의 새로운 출연자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그의 화려한 학력과 가족 모두가 명문대 출신이라는 배경을 전면에 내세웠다. 출연자와 그 가족이 졸업한 학교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가 그의 한국살이를 이야기하는 데에 꼭 필요한 설명은 아니었다고 본다.


출처: MBC


5월에 방송되었던 남아공 출신 저스틴의 이사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저스틴이 2년 동안 지내며 정들었던 해방촌 이웃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내용이었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께 내복을 선물하고 서툰 한글로 쓴 편지를 보여드리는 장면이 있었다. 서로를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라 부르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웃 간의 정은 국적을 초월해 아직 유효함을 느꼈다. 저스틴 외의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옆집 사는 사람들, 동네 주민들, 집 앞 가게 사장님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어울리고 있는지도 들여다보고 싶다.


출처: MBC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문을 닫고, 스스로를 가두며 버텨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곧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무색하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여가 시간의 TV 보는 즐거움을 논하는 것은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함께 살아가는 TV 속 이야기가 행복과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부딪혀 쉽게 소외될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이웃들의 삶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어서와’는 예능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언제쯤 이 모든 혼란이 끝나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올 때까지 새로운 모습의 ‘어서와’를 통해 이 힘든 시기에 ‘한국살이’를 함께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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