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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Nov 06. 2015

11화. 넘치는 열정도 때론 독이 될 수 있다

아트페스티벌 이야기 ⑪ 바다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일

▲ 국제 아트 비엔날레 콕스바잘 2015가 열리는 콕스바잘 공립도서관 ⓒ Orchid Chagma

비엔날레 기간 내내 항상 즐거운 일만 있고 파이팅이 넘쳐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며칠간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해 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더위를 먹었는지 두통이 심했고, 물갈이해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사실 밥 생각도 나지 않아, 물만 하루에도 3~4병씩 마셨는데 화장실 한번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하지만 주최 측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벵골어로 소통까지 가능한 우리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우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떤 연예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방송국이나 신문사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우리를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안 돼', '못 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오랜 기다림 속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고 소중했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가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일에 "Yes"를 외치며 열정을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했다. 


한국 갤러리에서나 종이접기 갤러리에 찾아온 사람들은 설명해줄 자원봉사자가 있었지만, 항상 우리가 안내해주길 요청해 한시도 찜통 갤러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묻지 않고 아이를 세우고 인증사진을 찍는 부모님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작품과 물건을 선물로 요구하는 사람들 등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그렇게 하루에도 같은 일들이 수백 번 반복되면서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다. 그러다 사람들의 요구도 점점 심해졌고 도가 지나친 부탁을 하는 사람 중에 스텝들도 껴 있었다. 그들은 거절했음에도 반복해서 계속 요구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넘어섰다는 판단이 들자, 예술 감독인 라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불평불만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은 전달해야 할 것 같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해도 괜찮아 

외국인이고, 여자라 지나친 관심이 쏠리고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미리 신경 쓰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가장 일을 잘하는 친구 두 명을 붙여줬다. 그 두 명이 맡고 있던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우리가 어딜 가든 함께 있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괜찮다고 하고 다른 일을 하게 했지만 한 명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상미의 보디가드처럼 붙어 다녔다.  


"당신들의 열정, 진심을 담은 행동, 모든 게 놀랍고 참 많이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당신이 즐기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요. 가끔은 벵골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모든 대답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라집이 조언해준 것처럼 벵골어를 못 하는 사람처럼 연기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과도한 부탁을 하는 사람들에겐 정확하게 거절을 했다. 지나친 친절도 우리를 위해 양보했다.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욕심은 조금 내려놓았다. 주위 친구들에게 도움도 요청하고 어떤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고 마음에도 다시 여유가 생겼다. 다른 갤러리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고 다른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넘치는 열정도 독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 2013년 종교 갈등으로 촉발된 불교도 마을 습격사건을 모티브로 한 '샤골'의 퍼포먼스 ⓒ DAPLS


바다를 만드는 일과 같다

국제 아트 비엔날레 콕스바잘 2015를 무사히 마쳐 한국으로 돌아와 있다. 벌써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까마득한 옛날 일 같기도 하고, 바로 어제 일 같기도 하다. 더위와 물갈이로 잘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자지 못했지만, 정말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방글라데시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가장 많이 말하고 들은 말이 "즐거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였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는 이유는 내가 즐거운 일이 함께해서도 즐거웠고 또 그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즐거운 일을 함께할 너무도 멋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물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불완전한 재원 조달 방식으로 인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축제를 운영하는 데 어려운 상황이며, 방글라데시 정정 불안 또한 큰 걸림돌이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라집은 우리가 하는 일이 서로 다른 줄기의 작은 강이 모여 바다를 이룬 것처럼 바다를 만드는 일과 같다고 했다. 결코, 바다는 한 줄기의 강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줄기의 강들이 모여 바다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함께해서 쌓여가는 시간이 모여 멋진 바다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행사를 준비하고 시작할 때부터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도움 주시고 격려와 응원으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행사기간 내내 도움을 준 방글라데시 팝 가수 메헤디와 인형극팀의 루미와 샤온. 인형극팀에겐 임경숙 작가가 후원해준 인형 만들기 체험키트를 선물했다.  ⓒ DAPLS
▲ 행사 기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행사장을 찾아와 모든 프로그램을 참여했던 친구들. 인형극과 종이접기 워크숍에도 참가한 친구들이다.  ⓒ DAP LS

보태기 | 이 글을 쓰는 요즘 우리는 이번 여행과 그동안의 방글라데시 기록을 모아 '행복'이라는 주제로 방글라데시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만났던 가슴 따뜻한 사람과 우리가 느끼고 경험한 행복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우리의 사진은 화려하거나 여느 사람들에겐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사진과 천진난만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시는 분 모두가 행복해지고 잠깐이라도 '행복'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전시회를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방글라데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기회가 되어준다면 더더욱 더할 나위 없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 DAPLS 사진전  행복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한다.  ⓒ DAPLS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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