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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시선으로 본 연약함의 미학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by DAPLS 이혜령
아름답지만, 위태롭고, 취약하지만 끈질긴
작고 연약한 존재들의 단단한 힘에 관한 이야기


포도뮤지엄의 전시는 나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어 늘 흥미로웠다. 이는 단순히 나의 개인적 취향과 일치해서가 아니라, 동시대의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이를 전시로 정교하게 엮어낸 기획력 덕분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 열심히 호흡하는 작은 존재이니까) 이러한 기획은 주제와 작품 간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관객에게 직관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일상적 감정부터 사회적 담론까지 폭넓은 사유를 이끌어내며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주목받아 왔다.


포도뮤지엄의 그간 주요 전시를 떠올려보면, 혐오와 차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왜곡된 공감 구조와 공감·연대의 의미를 다양한 시선의 작품으로 풀어낸 《너와 내가 만든 세상》(2021), 디아스포라와 다양한 마이너리티를 다루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이면서도 타인과 연결된 존재임을 전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2022), 그리고 아픈 몸과 노화를 비롯해 기억과 인지력이 서서히 사라지는 ‘인지저하증’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과 기억을 탐구한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2024)이 있었다. 이번 네 번째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는 우주적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유한함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공감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앞선 전시들의 문제의식을 모두 아우른다.


13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4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의 전시는 모나 하툼, 제니 홀저, 라이자 루, 애나벨 다우 등 네 명의 여성 작가가 장엄함과 섬뜩함이 공존하는 설치와 오브제를 통해, 구조적 폭력을 다룬 작품으로 구성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모나 하툼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맞이한다. 천장에서 수직으로 내려온 이 구조물은 관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만, 아름다움과 미묘한 위태로움이 빚어내는 긴장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모나 하툼의 <Remains to be Seen> ⓒ이혜령

제2전시실의 전시에서는 시간의 상대성과 감각적 경험을 조형 언어로 변주하며, 시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수미 카나자와가 신문지 위에 10B 연필로 무수히 그어낸 선들의 광택으로 구현한 우주 은하수, 매 분마다 새로운 시곗바늘을 만드는 반복 노동으로 현대인의 시간 감각을 문제화하는 마르텐 바스의 <리얼 타임 컨베이어 벨트 클락>, 실 위에 고정된 종이 스크린 위에 여러 프로젝터에서 투사하여 꿈 속 같은 공간을 가시화한 사라 제의 <Sleepers>,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는 개인의 시간 경험을 시계 속도로 번역한 이완의 <고유시> 등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조형 언어로 변환한 전시 구현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이완의 고유시, 사라 제의 <Sleepers> ⓒ이혜령

이어지는 제3전시실의 두 테마 공간 〈유리 코스모스〉와 〈우리는 별의 먼지다〉는 전시의 서사를 단순한 ‘작품 나열’이 아닌 공간적 경험으로 확장한다. '숨'과 '거울'이라는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소재를 매개로 전시를 풀어낸 방식이 흥미롭다. 숨은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내재된 생명력을 통해 어두운 공간을 밝히며 회복과 살아있음을 선언하고 치유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사방을 둘러싼 거울 속에서 자신이 무한히 복제되어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광대한 우주와 연결된 작은 존재로서의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이 공간은 존재론적 성찰의 장으로 기능한다.

제4전시실에서는 시부야 쇼의 연작이 가장 흥미로웠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매일 옥상에서 명상 후 그날의 신문 위에 채색한 36점의 작품은 세계 곳곳의 비극을 색과 형상으로 기록한다. 미국 내 총기 사건부터 한국의 12·3 비상계엄 사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세계 곳곳의 비극과 충격적인 사건들이 신문 지면 위에 색과 형상으로 새겨진다. 이는 단순한 뉴스의 소비가 아닌, 개인적 성찰과 사회적 기억이 만나는 지점에서의 예술적 응답이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액자를 넘기면 원본 신문을 볼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36개의 액자가 모두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심한 성격의 나는 결국 액자를 넘겨보지 못했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은 연약함을 결핍이나 패배로 그리지 않고 존재의 본질적 조건으로 재정의한다. ‘연약함’은 보호받아야 하는 취약성인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작품들은 이 모순적 속성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며, 동시대 미술이 사회적 폭력과 기억,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쇼 시부야의 <Manhattanhenge> ⓒ이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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