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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회사뎐

책이 되어버린 나무들

꿈을 가진 직장인들

by Le Studio Bleu

<< 프사 효과 >>


박지성의 사부님은 말했다. SNS 는 루저들이나 하는 거라고... 아니.... 이 영감님이!!!


사진에 댓글이 달렸다...?


며칠 전 SNS 메인 사진을 새로 바꿔 올렸다.

(정확히는 올해 초에 찍은 사진으로 다시 살짝 바꾼 것이었지만)


그리곤 며칠 뒤에

페북을 열어보곤 정말 깜짝 놀랐다!


분명 전에도 올린 사진인데,

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 있었던 거다.


심지어는 댓글도 이전에 달렸던 거랑

똑같이 쓰시는 분도 계셨다.

(형님은 저에 대한 관심이 식으셨군요.... ㅠㅠ)


나름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페북 친구님들에게, 까기 좋은 삶의 땅콩 하나를 던져 드린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입사동기

M 형이 남긴 댓글이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언제 전화로 연락이나 하자!"


나는 바로 메신저를 켜서 형님께 글을 보냈다.


"형, 메신저로 연락처 보냈어요~

카톡 아이디도요 ^^"


얼마 안 있어 답장이 왔고,

우리는 카톡으로 바로 친구 등록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SNS 가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퍼기 감독 같은 분들은 모르겠지만,

SNS는 나에겐 고마운 존재다.


고된 시집살이로 아가씨 시절 알고 지내던 친구들을 다 잃어버린, 우리 어머니만 보더라도 항상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시절 어머니가 핸드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시어머니 눈치 보시느라 못 만났던 친구들을 지금은 실컷 만나고 다니고 계시거나, 음..... 아니면 내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눈물겨운 엄마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려놓았다면 아마도, <당장 이혼해> 라는 조언들이 엄청 달렸을 테니깐...)


다시 돌아와서,

독서도 좋지만 나는 SNS의 순기능도 믿는 사람이다.


애전 글에도 이야기했지만,

분명 인터넷과 핸드폰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운석처럼 큰 충격을 주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싫은 방향이든 좋은 방향이든).


연락이 끊긴 오랜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기능이 어디 있을까?



<< 꿈을가진 사람 >>


M형과 나는 정말 이런 농담도 나누었었다~ ^^;;;


나는 메신저에서 받은 번호를 눌러본다.

그리고 가만히 속으로 세어본다.


퇴사를 하고,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보고....

정말 10년이 넘은 시간을 형과 보지 못한 거다.


내가 처음 다닌 회사는

자동차에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회사 덕분에 안국동이란 동네의 골목골목 맛집들도 알게되고(주로 야근을 하면서 가게 되었지만), 강남의 테헤란로까지 이사를 가서 세상 중심이 여기겠거니 하던 착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자동차는 그냥 바퀴만 붙이면 굴러간다 생각하고,

숫자만 보면 어지럼증이 나던... 아주 순도 높은 백치 문과생이었다.


나의 군대 이력을 보곤 조폭 같은 조직 문화에 굉장히 잘 적응할 거라는 오해(?)를 산탓에, 거기만은 가지 않았으면 했던 재무부서로 배치되어 연일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학과 때도 회계 과목은 피해 가며 다녔던 내가

평생의 밥벌이를 이걸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히는 건 당연한 일.


조그만 사무실 책상에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의 모습은 다들 비슷해 보였다.


일에 지쳐 풀린 눈으로 오늘은 또, 얼마나 더 늦게 퇴근을 해야 하나 하며, 윗사람들 눈치만 살피던 선임들.


비슷한 이야기지만 매월 들어오는 월급뽕은 좋았고, 주변 선배들은 모이기만 하면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주식 이야기, 아파트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어디서든 한 둘씩은 유별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M형은 나에겐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일단 이 형은 소속부터가 아주 특이했다.


<농구단 매니저>

우리 회사는 커다란 농구단을 운영하고 있었고, 형의 직책은 그런 농구단 운영을 지원하는 서포터 역할이었다.


<제리 맥과이어> 를 아신다면, 서포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상상이 갈 것이지만.... 실제론 저렇진 않아요 ^^


농구를 좋아했던 나는 형들과 운명적(?)이게도,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M형은 일요일 저녁이면 출근 생각에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나와는 다르게, 하늘이 내려준 직업을 만난듯 했다.


열정이 남달랐던 형은,

대학시절부터 오마이 뉴스 같은 인터넷 매체에 <시민기자> 로 활약하며 기고도 했었고, 직접 뛰어다니며 선수들의 인터뷰를 따고 분석 기사도 많이 내었었다.


입사면접 때 도시 전설처럼 전해지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는데(사실 나도 그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 M형의 전설은 면접관 앞에 자신 있게 던진 '한 박스' 였다.


면접날 낑낑거리며 라면 박스를 들고 들어가,

자신의 면접관 앞에 던진 것이다.... (물론 공손하게)


박스 안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스포츠 마케팅 관련 활동 결과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


그만큼 형은 그 일에 '미쳐' 있었고,

'스포츠 마케팅' 이라는 일을 사랑하는 형이었다.


스포츠 마케팅 이라는 분야가 어떤지 전혀 모르지만 그냥 멋져 보이던 나는 형을 따라다니며 많은 질문들을 했고, 착한 형은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대답해 주곤 했다.


모두가 꿈을 잊고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다란 장례식장 같던 회사 안에서, M형의 생기 넘치는 눈은 나에겐 존경스러우면서도, 연구 주제처럼 신비로운 대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형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M형과 나는 퇴근길에 한적한 종로의 어느 카페에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한참 스포츠 마케팅 이야기를 하던 형은 나에게

자기의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나중에 학교를 짓고 싶어,

투자할 사람들 모아서 말야.


우리나라 운동선수들 중에

불쌍하게 맞으며 운동해야 하는 애들이 많아.


내가 이런 일을 하니깐 보이잖아?

재능은 있는데 집안 형편 어려운 그런 애들이

많거든.

그런 애들 모아서 외국의 클럽들처럼,

낮에는 공부시키고, 학교 끝나면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거야.


물론 때리고 이런 것도 없고 인간적으로 말이야.

언젠가 꼭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


맑은 눈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형을 보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이나마 형의 뒤에서

후광이 나는 것 같았다면 거짓말일까?


그 많은 야근과 출장 속에서도,

형의 눈망울이 그렇게 맑은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회사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사원증, 급여통장 보다도,

회사라는 공간에서 삶의 비전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건, 쉽게 갖지못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하건대 이 감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게 M형

나의 삶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자,

닮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서울에는 연고가 없었던 나는

주말이면 회사에 불려나가 일을 했다.


그러다 시간이 날 때면

가까운 농구대를 찾아가 링에 공을 던지곤 했다.


형이 이야기하던 꿈을 떠올리면서,

답답하던 마음에 나는 항상 물었던것 같다.


'나의 꿈은 뭘까?"


애꿎은 링은 나의 공들을 튕겨냈고,

한참을 그렇게 공을 던지다 나는 코트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아쉽게도 대답은 코트 위에도,

서점에 많은 똑똑한 어른들이 쓴 책들에도 없었다.


나의 하루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책이 되어버린 나무들 >>


하얀 종이는 많은 기억들을 안고있다


흐르는 한강을 지나며 무표정하게 출퇴근하던 나는

팽팽한 시위의 화살이 터져 날아가듯, 어느 순간 회사를 떠나 나의 길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M형 묵묵히 한자리를 지켜 이제는

큰 회사의 중간 간부가 되어있을 터였다.


신호음이 울리고 어느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나도 안 변했다~!


강산이 변하고 듣는 목소리지만,

나는 한 번에 형의 목소리를 알아봤다.


"나 지금 영업부서에 있어."


"네?"


오랫동안 듣지 못한 형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먼저 형이 담당하던 농구팀 프런트가 사라져 버렸다.

본인 입장에선 좋아하던 부서가 사라져 팔짝 뛸 노릇이겠지만, 회사는 유능한 신입사원들 둘을 돈만 쓰는 것 같아 보이는 농구단에 붙여놓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나 보다.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팠던 형은 졸지에,

현장을 알아야 된다며 공장으로 발령 나서 생산라인에서 관리업무를 맡게 되었고, 어마무시한 고생을 했던 것 같다.

(형도 나처럼 자동차가 바퀴만 붙이면 그냥 나아간다고 생각하던 순진한 문과생 이었으니깐....)


그리고, 가장 큰 핸디캡,

공장 생산담당이 술을 마실수 없다니...!


흘러 다니는 풍문으로 현장 분위기를 어렴풋이 듣고 있던 나로서는 형이 겪었을 고생이 눈앞에 선해왔다.


거기다 이제는

알콜 한 방울만 들어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형이 '영업' ?


"형, 술 못 마시지 않으셨어요?"


"지금도 잘 못 마셔, 그래서 일로 더 승부해야지."


나의 귀에는 '잘' 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세상에....

알콜 혐오증이 있던 형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입사 동기들은 절반 정도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남은 우리들은 이제 위를 보면서 달려가고 있고,

비슷한 잰걸음을 하는 것 같지만,

반 발 이나마 먼저 앞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경쟁 레이스 안에 있는 형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 가족들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서,

내년엔 팀장 달아야지.


난 예전에 현장에서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

지금 삶이 너무 감사해."


들뜬 기분으로 형의 '꿈' 에 대한 추억을

꺼내려던 나는 급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흐르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사랑스런 아내, 아이들, 내 가족들...

이제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이 생겨버린 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해 본다.


예전에 나랑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했던

그 꿈들을 M형은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수화기 너머에 이야기들을 조용히 듣다가,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젠 그런 말들을 더 이상,

쉬이 꺼낼 순 없는 그런 시간에 우리는 있다는 것을..


나의 낭만 가득한 넋두리 하나하나가,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을 M형에겐

사치스러운 공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렵게 봉인했을 기억을 들추어내는 것이,

행여나 형에게 기분 나쁜 주제로 받아들여질까 조심스러워 진다.


이런 것들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삶이란 강에 몸을 맡기곤 멀리 떠내려 왔다....


전화를 끊고 늦은 저녁,

제주도 신입사원 연수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보다,

지금 모습의 M형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와 아이들에게 충실한 삶.


가슴속 어딘가에 꿈들을 묻어두고,

그렇게 대문을 나설 M형의 모습이


어릴 적 대문 밖으로 배웅 나가며 인사드리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닮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로 인해 가슴 깊이 봉인해버린

M형과 같은 그런 꿈들이 있지 않았을까?


매미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저녁,

어딘가에 저장해 놓은 시 하나를 찾아본다.


언젠가 책을 읽다 마음에 들어

보관해 놓은 시구절.


< 책 >

솔직히 말해서
책은 흰 종이로 있는 게 좋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로 있고 싶었다.

그러나 벌써 책이 되고 말았으니,
옛날의 일을 잊어버리려고
책은 자신을 읽어 보았다.

"솔직히 흰 종이로 있는게 좋았다"
고 검은 문자로 써 있었다.

나쁘지 않다고 책은 생각했다.
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준다.

책은 책으로 있다는 게
조금은 기뻤다.

- 다나카와 슌타로 -




우리는 그렇게 나무로 태어나,

한 권의 책이 되어간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그런 기억들 사이를,

아름다웠던 추억들에 기대어 위로받다가,

너무나 넘겨져버린 삶의 페이지에 놀라곤 한다.


언젠가,

시간의 먼지가 가득 쌓인 '나' 라는 이름의 책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찾아내어 곱게 펴놓고,

한줄 한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책이 되어버린 어린 나무는 사실,

파란 하늘에 닿고 싶었다고...


지금은 사그라든 그런 꿈의 조각들이

삶이란 책 페이지 구석구석에 꾹꾹 눌려져,

어렴풋이 흔적이나마 남겨놓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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