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음 생에 만나면..

by 삐딱한 나선생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다음 생엔 내가 니 아들로 태어나마!"

주어진 관계가 너무 억울할 땐 이런 말도 나온다.

교사도 그런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악연


"아우.. 이거 왜 해야 돼?!

너네는 이게 재밌냐?"

뒤에서 궁시렁거린다.


차라리 나한테 말을 하던가.

혼잣말 인척 다 들리게 해 놓고선.

건의는 예의를 갖춰 말하면 들어준다고도 했는데.


차라리 별로라고 대놓고 말하는 무개념은 악의라도 없다.

차라리 대판 싸우고 풀 수 있는 남자애들이면 모르겠다.

반감을 드러낸 눈빛으로 지켜보는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네가 예민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어쩌면 내 방식이나 말이 너한테 싫을 수도 있었겠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린 이미 나빠져버렸어.



학연


어떤 날은 네가 늦게 왔어.

또 어떤 날은 안내문을 며칠 내지 않았지.

다른 날은 숙제를 안 하기도, 엎드려 자기도 했어.


나도 널 그대로 이해해주고도 싶단다.

늦은 이유도, 안내문을, 숙제를 못 낸 이유도 있겠지.

하지만 반복되는 문제에 나도 교사로서 가만있을 순 없었단다.


그래.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

네가 잠을 자던 친구들은 상관 안 해.

나만 너의 문제에 개입하는 '선생'이란 인간이니까.


내가 널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면 이렇게 싸울 필요도 없었는데.

하지만 내가 널 가르치지 않았다면 만남의 이유도 없었던 것을.

내가 너와 다른 상황에,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었다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는, 그런 마음이 있어.



인연


언젠가 멀리 현장체험을 간 날이었지.

난 조금 멀리서 너를 지켜볼 수 있었어.

넌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었지.


그곳에서 넌 아주 밝게 빛나 보였어.

교실을 벗어나서, 내 수업을 벗어나서, 나를 벗어나서.

살아있는 네가 그리 이뻐 보일 수가 없었지.


그래.

이번 생엔 그저 너를 보내줘야 하는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하필 이 시기에, 너의 담임선생님으로 만나서.

서로 더 상처만 남길 바에야.


너를 가르치겠다는 욕심은 버릴게.

그저 무사히 너의 1년이, 우리의 1년이 지나가길.

너의 삶에 또 다른 좋은 인연들이 많이 나타날 거야.

그리고 나중엔, 먼 미래엔, 다음 생에는 나도 웃으며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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