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26
슬스팀원들은 "나이스"가 헤프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습관적으로 나이스를 외친다. 벽에 붙어 있으면 아직 홀드를 제압하지 못했는데도, 반동을 잡지 못했는데도 뒤에서 팀원들이 외치는 나이스 소리가 들린다. '모든 클라이머가 그렇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슬스팀은 나이스 상습범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주 외친다.
옒과 시느, 노새는 함께 강습을 듣는데 수업 중에도 터져 나오는 나이스를 제어할 수 없어서 선생님이 '나이스 금지령'을 내릴 정도다. 홀드를 진짜로 완전히 제압했을 때만 외치라는 가이드를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끼리만 있으면 여전히 아무 때나 나이스를 외친다.
이쯤 되면 우리한테 나이스는 잘했다는 칭찬의 의미보단 '반드시 성공하라'는 주문에 가까운 것 같다. 실제로 도저히 못 풀 듯했던 문제도 팀원들의 설레발 나이스를 들으면 풀릴 때가 있다. 나이스를 듣고도 못 풀고 내려가면 왠지 미안하고 머쓱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해서든 완등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주문인 셈이다.
혼클 하러 가면 팀원들의 나이스 소리가 없어서 그런지 제대로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하나도 완등하지 못하는 빵클을 기록할 때도 많다. (절대 실력이 부족해서 아님, 아무튼 아님.) 분명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는 사람들이 서로 응원하는 소리가 낯설고 부끄럽기까지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나이스에 중독됐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나이스 없이 완등할 수 없는 나약한 클라이머가 되어버렸으니.
한 가지 아쉬운 건 아직 내 입 밖으로 나이스 소리가 잘 안 나온다는 거다. 정말 멋지게 홀드를 제압한 경우가 아니면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칭찬 듣기만 좋아하고 타인에게는 해주지 않는 야박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사실 원래부터 그런 성격인 걸 알고 있었는데 클라이밍을 하면서 더 확실히 알게 돼 살짝 씁쓸하다. 매번 나의 간장 종지 같은 마음을 확인하는 느낌이라서.
그래도 최근에는 너른 마음으로 나이스를 외쳐 보려고 노력 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10번에 4번 정도는 진심이 아닌 나이스도 있었다. 그렇다고 응원하는 마음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완등을 기원하는 마음만은 넘치게 담았다. 나이스에 야박한 친구와 매번 함께 클라이밍 해주는 팀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해본다. 앞으로 내가 더 노력할게!
추신.
이번 레터 원고를 피드백하며 옒이 말하길, 나이스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 홀드로 손을 뻗은 용기에 대한 격려"라고. 이번 주도 수고한 여러분께도 조심스레 나이스를 보내본다.
협업 문의 : slowstarter@slowstar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