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한 순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을 재학할 때, 정말 평온하던 어느 날보다 다르지 않았던 날. 아주 큰 변화가 시작이 된다.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당시 나는 <영어시간>이었고, 보조선생님이 나를 응시하시며, 한순간에 나는 하교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하는 생각을 하며 복도로 나왔을 때쯤 나는 선생님을 응시하며 묻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교무실로 가게 되었다.
"다슬아, 오해 말고 들어."
라고 학생주임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황당한 나의 표정으로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게 되었고, 나는 여기에 왜 있는가.라고 분위기파악을 하려고 애를 썼고, 그러다가 학생주임선생님의 목소리가 겨우 내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네? 네.."
어리둥절함과 이 무겁고 싸한 느낌과 굉장한 거부감.
"네가 안 그랬을 거라고 믿는데, 00이 때린 적 있니?"
"아뇨.."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한 없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00과 같은 반이었다.
'내가 때려? 누구를? 왜? 무엇 때문에?'라는 생각과 함께 어리둥절하였다. '나는 때린 적이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욕설조차 한 적이 없는걸.' 하며 살포시 억울함이 밀려올 때쯤 하교를 하게 되었다.
<그냥>하는 하교였으면 '오예! 했겠지만, 무거운 분위기와 함께 하교하는 건 너무나 찜찜했다. 알고 보니, 나는 00이라는 아이를 <폭력>을 가한 가해자. 00 이는 나에게 폭력을 받은 피해자로 사건이 접수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교>라는 말보다는 정확히는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조치.
신고자는 00의 아버지였다.
신고자가 경찰에 전화에 난동을 부리니 어쩔 수 없이 순간적 분리조치가 굳어진 분리조치가 되어버렸다.
다음날부터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집에 있어야 되는 마치 사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유배가 된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라는 스트레스는 나를 따라왔고 그래도 해야 할 물리치료는 했어야 됐기에 물리치료를 하러 병원에 갔다.
한참 물리치료를 받다가 기억이 없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경기로 인하여 블랙아웃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 나의 기억을 가져가 버린 것처럼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상황을 알고 계시던 물리치료사 선생님은 엄마께 '정신의학과'진료를 권유하셨다. 그렇게 나는 멍한 상태로 난생처음 '정신의학과'를 가게 된다.
그렇게 동네병원, 2차 병원, 결국엔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그 사유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입원치료를 권해드립니다'가 단골 멘트였다. 설문지 빼고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거부하는 아이였다. 그저 학교이야기만 나오면 오열을 하고 나오는 게 다였다. 2차 병원까지 갔을 때 나는 한 3일 정도 말을 하지 않았다. 실어증증상이 아니라, 자의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나마 하는 말이 '꼭 필요한 말.' 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술치료를 <스트레스를 풀 목적으로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 진행하는 상태>였으므로 내 소식을 들은 미술치료사 선생님은 헐레벌떡하고 사무실로 뛰어오셨다. 외부치료를 진행하였으나, 그전에 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대학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외래로 병행하기 시작하였다.
엄마는 내게 오셔서 말씀을 하셨다.
"다슬아, 힘들면 자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요즘에는 자퇴하고도 잘 사는 사람 많더라."
"..."
미묘했다. 엄마는 학구열이 있는 편이신데 내게 <자퇴>를 권유하다니. 그저 정말 눈물만 흘렀다.
슬픔이란 복합적인 감정들에 벅차올랐다.
어느새, 나는 홈스쿨링을 하게 됐을 때쯤, 엄마는 학교일로 바빠졌다. 내가 분리조치 중이니 학교장과 교감선생님은 부모가 봐야 되니 말이다. 나는 어느 순간 엄마와 친구 덕분에 좀 더 점점 사건의 전말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00은 일부러 말을 하지 않으며, 걷는 것도 걷다가 멈춰서 내가 한두 번 넘어진 것도 아니고, 사고들도 있었으나, 사건화를 시키지 않고 잘 지내보려고 했다. 그 아이는 상태가 심하지 않은 발달장애였다. 그렇다고 혼자 밥을 못 먹거나, 씻지를 못하 거는 등 <기본적인 행동>은 다 할 수 있는 아이였다. 의사소통도 물론 가능한 아이였다. 시작은 나를 <질투>가 시발점이었다.
중증장애 뇌병변장애인 나를 곱게 보지 못하는 아이였다. 본인에게 관심을 갖길 바라는 게 그 아이의 목표였다. 그러기에는 나는 뇌전증이 있어 자주 큰 소리를 들으면 바로 경기를 했다. 한 번은 119를 불러야 할 정도였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나의 컨디션은 중요했다. 그리고 규칙 중 <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이가 우선순위이다.>라는 교육청 방침도 있었다.
그렇게 나를 질투하는 그녀는 행동을 은밀하게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짝꿍을 공략하였다. 내가 나온 학교는 여학교로 은근한 여자들의 기싸움이 있는데 그 아이는 '보호해야 한다'라는 말을 아이들은 입에 달고 다녔다. 그래서 그것을 악용하기 시작하였다. 툭-툭- 한 마디씩 말을 하자 '00이 말한다'라고 아이들은 벌 때같이 갔다고 하고, 반을 휘어잡는 아이들을 기준으로 번호를 수집하여 <단체채팅방>을 개설하였다. 거기서 폭력에 증거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물론, 거짓된 것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를 상습적으로 구타하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고를 방지하고자 CCTV가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단톡방에서 그렇게 말을 하여 학교 측은 CCTV자료는 경찰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의 미움을 딱히 산적은 없다. 아이들 측은 '다슬이는 말도 할 수 있는데 당연히 00 이를 더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 불공평하다'라고 소리를 외쳐댔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런 자료들, 증언들이 넘쳐났다.
하다 못해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리를 내 베스트프렌드에게 들었다. 그 친구가 유일하게 몇 안 되는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때는 그래도 '아.. 힘들다'라고 표현을 조금은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친구와 통화는 할 수 있는 정도랄까. 그래도 누군가 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게 친했던 사람일지라도.
"너 죽었다고 애들이 하고 다니더라.."
"어디서?"
"00 아파트옥상"
"와 그렇게 자세하다고? 누가 그랬는데?"
라고 소름이 쫙-끼쳤다.
"Y가 소문내었던데?"
나는 마치 미친 듯이 웃다가 한마디 툭- 했다.
"아.. 옥상까지 나 언제 올라갔대? 가다가 힘들어서 뻗겠구먼."
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다가 눈물이 소나기처럼 흘렀다.
그런 지옥 같은 날들에 반복이었다.
학교에 드디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write_dase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