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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유목민 Oct 15. 2017

추석

'행복'을 빌어주는 작은 마음, '성형수술'


명절 날, 시골에 내려가면 종종 얼굴을 보는 사촌 동생이 한 명 있다. 아이의 이름은 ‘은희’다. 나보다 9살 어리고, 올해 갓 대학에 입학했으며, 사는 곳은 서울이다. 명절에 은희네 가족과 마주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게 빠듯해서 고향을 찾지 못할 때가 많았고, 어쩌다가 한 번 내려와도 ‘죄책감’과 ‘미안함’ 속에서 며칠을 보내다 돌아갔다. 은희네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작은아버지께선 항상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밥을 드시곤 했다. 은희도, 은희네 오빠도 그랬다.          


은희는 어려서부터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정확히 말해 스스로의 외모를 부끄러워했다. 학교생활이 재미있냐는 나의 진부하고 뻔한 질문에, 아이는 ‘예쁜 애들은 재밌겠지만, 나처럼 별로인 애들은 재미없다’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으로 받아치곤 했다. 절대로 못생긴 외모가 아니라고, 외모보단 내면이 중요한 법이라고 설득해봤자 소용없었다. 그녀는 무섭게 되받아쳤다. “다들 말은 그렇게 하지...”          


은희는 자신의 턱을 감추고 싶어 했다. 은희의 턱은 유난히 크고 길었다. 어린 시절에 갸름하고 작았던 녀석이 사춘기 시절을 거치면서 어느 샌가 자라있었다. 남들의 시선에 민감한 시기여서 그랬던 걸까. 그녀는 늘 고개를 반쯤 숙이고 다녔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목이 긴 상의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 다니는 버릇도 있었다. 그리고 자주 성형수술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춘기 소녀는 의학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스스로의 외모가 바뀔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귀결은 언제나 같았다. “그래봤자 우리 집은 가난해서 수술은 평생 꿈도 못 꿔”          


은희는 ‘낙관’보단 ‘비관에 익숙한 아이였다. 그녀가 돌을 맞이했을 무렵,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메우려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으면서 빚이 늘었다. 전세와 월세를 오갔고,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일가 식가들의 도움을 빌렸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실업자가 된 남편을 대신해 작은 어머니는 일을 시작했고, 작은 아버지는 감언이설로 자신을 꾀어 망해가던 가게를 넘긴 지인을 향한 분노와 자책 사이를 오가며 술을 마셨다. 부부의 별거가 시작된 것도 그쯤이었다. 두 분은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외면할 수 없는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았다. 그것이 은희가 태어나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일어나 일이다.’영세 사업자의 몰락‘으로 시작해서 ’가난‘을 거쳐 ’가족해체‘ 직전에 이르는 오늘 날 한국사회의 불안하고 우울한 단면과 마주하는 것이 그녀의 삶 대부분을 차지했다.          


몇 달 전, 은희의 수술 소식을 들었다. 턱뼈의 위치와 모양을 교정하는 수술이었다. 수술비는 친가 식구들이 한두 푼씩 모아 마련된 모양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일가친척들이 선뜻 내놓은 데 놀랐고, 그렇게 모인 돈이 조카의 성형수술 비용이라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결심을 했는지 물었다. “조카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어서...”가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자문했다. 성형수술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을까?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올 추석에 은희와 다시 만났다. 2년 만의 만남이었다. 못 보던 사이 그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학에 입학했고, 화장을 시작했으며, 더 이상 ‘외모’와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눈에 띄는 변화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이제 수그리던 고개를 들고, 사람의 눈을 보며 이야기했다. 냉소가 흐르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져 있었고, 삐죽 나온 입으로 툴툴거리던 말투는 또렷하고 용기 있는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난생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고 싶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비관의 정서가 그녀를 지배하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몇 가지 좋은 소식이 더 들려왔다. 은희네 가족이 신정동에 있는 평수 넓은 주택에 전세를 끼고 입주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께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셨고, 은희의 오빠는 이제 곧 군대에서 돌아온다. 작은 어머니의 얼굴에선 간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외모 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딸이 위축되거나 우울감에 빠질 때, 곁에서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람이 작은어머니셨다. 그녀는 수술이 잘 되고 못되고를 떠나 딸의 소원이 성취됐다는 점을 고맙고 기쁘게 생각했다. 작은 아버지 역시 딸이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진 것 같다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덕분에 그 날,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은희네 가족 모두가 전에 없던 ‘낙관’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성형수술의 가치를 단순히 비용과 손익의 관점에서 따지려던 나의 태도가 어리석었음을.      


은희네 가족이 전에 볼 수 없었던 웃는 얼굴로 명절을 맞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더불어 은희가 달라진 표정과 말투로 희망섞인 앞날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온전히 '성형수술' 때문이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이 변하는 데에는 수십 가지 이유가 있고, 인간의 감정은  날마다 사소한 이유로 기쁨과 슬픔을 오가곤 하니. 하지만 그 날의 경험(성형수술)이 은희의 삶 속에 가져온 변화는 결코 사소하지 않았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사람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절망에 빠지고 자살을 꿈꾼다고 하지 않던가. 일가친척들의 각별한 마음이 담긴 도움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그녀는 분명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밑천을 얻었을 것이다. 19년을 살면서 기쁘고 좋은 일을 별로 경험해본 적 없는 그녀지만, 그 날만큼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절망' 대신 앞날을 살아갈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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