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프로보노 3화
'프로보노'.
드라마가 재미있으면 작가가 궁금해진다.
박진영도 눈을 떼질 못하겠는 여인에게 '어머님이 누구니'라고 물어보지 않았는가.
훌륭한 무언가를 보면 그 모태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모양이다.
도대체 작가가 누구이기에 '법'으로 이렇게 흥미로운 서사를 이끌어낸 것일까?
프로보노의 모태는 작가 문유석이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법학 석사를 졸업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지낸 화려한 이력을 지니신 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었구나 하고.
3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3화에서 12살 강훈이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한 하나님에게 소송을 해달라고 프로보노팀을 찾아간다. 프로보노팀은 강훈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사전에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그래서 출생을 하게 한 산부인과에 소송을 건다.
그리고, 3화 마지막쯤에서 강훈이의 이야기를 들은 판사는 이런 판결을 내린다.
'원고가 승소하려면 12살 소년 강훈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나았다. 그의 삶, 생명 자체가 손해에 불과하다. 이런 참담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대한민국 헌법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의 생명은 똑같이 존엄하다는 것을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헌법상 생명보다 존귀한 권리가 없는 이상, 생명이 없는 상태가 생명보다 나았다는 가정적 판단은 불가능합니다. (중략) 원고 김강훈의 출생을 손해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합니다.'
'생명 자체가 손해에 불과하다는 참담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출생을 손해로 인정할 수 없다'
이 문장들이 한동안 귓속을 웅웅 울려댔다.
누구나 한 번쯤 녹록지 않은 삶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너져 내린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날엔 으레 그 그런 생각도 든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여기가 지옥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은 결국, 나를 잡아먹고야 만다.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삶이 고통이라면 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죽어야 하는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을 땐, 죽어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봤다. 그런데 살아야 할 이유가 마땅히 없듯, 죽어야 할 이유도 마땅히 없었다.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혹 미욱한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죽어 마땅한 일은 아니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
맞다. 프로보노 판사의 말처럼 당신의 출생을 손해로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어차피 죽는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길어봐야 100년 안쪽이다. 굳이 죽음을 찾아가지 않아도 죽음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오기 전에 둘레둘레 삶이라는 것을 둘러보기도 하고, 뛰다가 걷다가 앉아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면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잘 버티다 보면, 또 살고 싶어 지는 순간도 온다.
그러니까 우리 잘 버텨보자고, 그냥 그 말이 하고 싶었다.